토요일 정오 직전, 그는 그녀의 집 앞에 왔다. 그녀는 등이 파인 노란 여름 원피스를, 그는 빨강과 초록이 섞인 웨스턴 풍의 반소매 셔츠를 입었다.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60
아주 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요. 좀 신기해요. 여기 깃든 우정이 좋아요. 함께하는 시간이 좋고요. 밤의 어둠속에서 이렇게 함께 있는 것.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잠이 깼을 때 당신이 내 옆에서 숨 쉬는 소리를 듣는 것.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109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다이앤 말고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을 거예요.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며 동시에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시에 완전히 빠져 살았죠. 당시 인기 있었던 일반적인 시인들, 그러니까 T. S. 엘리엇, 딜런 토머스, e. e. 커밍스, 로버트 프로스트, 월트 휘트먼, 에밀리 디킨슨 등등을 읽었고. 하우스먼, 매슈 아놀드, 존 던의 시편들도 찾아 읽었죠.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들, 브라우닝, 테니슨도요. 몇 편은 외우기도 했어요.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105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빗소리를 들었다. 우리 둘 다 인생이 제대로, 뜻대로 살아지지 않은 거네요. 그가 말했다. 그래도 지금은, 이 순간은, 그냥 좋네요. 이렇게 좋을 자격이 내게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요. 그가 말했다. 어머, 당신도 행복할 자격 있어요. 그렇게 안 믿어요?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110
그래요. 오래도록 돌봐줬어요. 그렇게 해주고 싶었어요. 아니, 그래야만 했어요. 그 일요일 아침 교회에서 죽기 전까지 아프다 낫기를 되풀이했어요. 그리고, 맞아요, 나는 그를 돌봐줬어요. 달리 방도가 없잖아요. 우리는 오래 서로에게 연결된 삶을 살았으니까요. 우리 둘 누구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게 우리의 역사였어요.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134
루이스가 말했다. 지난해 다이앤은 끔찍하게 시달렸어요. 그저 계속 아팠으니까요. 화학요법과 방사선치료를 받았지만 암은 속도를 좀 늦추었을 뿐 거기 그대로 있었어요. 절대로 완전히 몸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암이 악화되면서 치료를 거부하고 그렇게 속절없이 쇠약해졌죠.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148
당신은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옛날만큼은 아니에요. 일종의 내세를 믿게 됐거든요. 우리 본래 자아로, 영적 자아로 돌아가는 거라고, 거기로 돌아가기 전까지 그냥 이 물리적 육체에 깃들어 살 뿐이라고 생각해요.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148
그녀는 내게서 원했던 걸 얻지 못했거든요. 삶이, 결혼이 어때야 한다는 관념 같은 걸 갖고 있었는데 우리의 삶과 결혼은 거기서 멀었어요. 그런 점에서 나는 그녀를 실망시킨 셈이죠. 다른 남자였어야 했어요.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150
또 스스로에게 가혹하게 굴고 있네요. 애디가 말했다. 원하는 걸 다 얻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대요? 혹시 있대도 극소수일 거예요. 언제나 마치 눈먼 사람들처럼 서로와 부딪치고 해묵은 생각들과 꿈들과 엉뚱한 오해들을 행동으로 옮기며 사는 거예요. 물론 아직은 당신과 나는 그렇지 않아요. 당장은, 오늘은 아니에요.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150
처음 시작했을 때 같군요. 처음으로 돌아가 시작하는 것 같아요. 거기서 당신이 테이프를 끊고. 다만 이젠 조심한다는 것만 다른가요? 어쩌면 계속인 건지도 몰라요. 그녀가 말했다. 아직도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원하는 만큼, 이어지는 만큼은요. 오늘 밤에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요? 그녀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 너머는 칠흑이었다. 당신, 거기 지금 추워요?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183
다른 사람의 인생을 고쳐줄 수는 없잖아요. 루이스가 말했다. 늘 고쳐주고 싶어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죠.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151
어느 일요일, 그들은 주방 테이블에 앉아 아침 커피를 마셨다. <포스트> 지에 실린 덴버 공연예술 센터의 새 시즌 연극 프로그램 광고를 본 애디가 말했다. 홀트 카운티에 대한 그 마지막 소설을 상연한다는데요? 죽어가는 노인과 목사에 대한 이야기요.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152
그래요, 우리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죠. 우리 나이에 이런 게 아직 남아 있으리라는 걸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무 변화도 흥분도 없이 모든 게 막을 내려버린 게 아니었다는, 몸도 영혼도 말라비틀어져버린 게 아니었다는 걸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걸 하고 있지도 않잖아요. 하고 싶은가요? 애디가 말했다.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렸어요.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154
가도 될지 모르겠어서. 아직도 이해를 못하네요. 나는 당신처럼 혼자 앉아 생각에 잠기고 문제를 정리하고 그러기가 싫어요. 당신이 와주기를, 나와 이야기를 해주기를 원해요. 먼저 좀 씻고요. 안 씻어도 돼요. 아니, 씻어야 해요. 한 시간 안에 갈게요. 그는 언제나처럼 면도와 샤워를 하고 어두운 저녁, 이웃집들을 지나 애디의 집에 도착했다. 현관 앞에 앉아 기다리던 그녀가 층계 위에 서서 다 보이는 곳에서는 처음으로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어떤 때는 정말이지 외고집이라니까. 그녀가 말했다. 대체 언제쯤이나 깨달을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지진아인 줄은 몰랐는데. 아마 그런가 봐요. 나에 관한 한 지진아예요.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157
루이스는 이제 방에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침대 시트 아래 누운 애디에게 등을 보이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뒤돌아서자, 그가 모르는 새에 그녀는 시트를 걷어낸 채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침대 옆 램프에서 은은한 불빛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가 그대로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159
떨 것 없어요. 그가 말했다. 아름다우니까요. 엉덩이와 아랫배에 살이 너무 붙었어요. 이 늙은 몸뚱어리. 난 이제 늙은 여자예요. 아, 늙은 무어 부인. 당신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답니다. 딱 적당해요. 이렇게 보이는 게 맞아요. 무슨 열세 살 소녀처럼 가슴도 엉덩이도 없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글쎄요, 전에는 어쨌는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가 않네요. 나도 이렇게 됐는걸요. 그가 말했다. 배가 불룩 튀어나왔어요. 팔다리는 노인처럼 가늘어져버렸고. 내게는 좋아 보여요. 그녀가 말했다. 그나저나 계속 거기 서 있네요. 눕지 않을 거예요? 밤새도록 그렇게 서 있을 거냐고요?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171
아니에요. 하지만 여러 해 동안 안 해본 일이니까요. 시인이 말했듯 흐물흐물한 시간이 온 거겠죠. 이제 난 한낱 늙은 개자식일 뿐이에요.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171
어느 날 저녁, 날이 어두워지자 그들은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루이스가 애디를 커다란 그네 위에 앉혔다. 선선한 저녁 공기 속에서 그녀는 앞으로 치솟았다 내려와 뒤로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치맛단이 무릎 위에서 펄럭거렸다.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이층 앞쪽 방에 들어가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여름 밤 공기를 느끼며 알몸으로 나란히 누웠다.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172
나랑 같이 다녀요. 그가 말했다. 배우는 게 많을 거예요, 아가씨. 루이스가 셔츠와 바지와 속옷을 벗어 풀밭 위에 올려놓고 물속으로 들어가 첨벙대며 앉았다. 좋았어요. 애디가 말했다. 당신이 그럴 거라면 뭐. 그녀가 원피스를 위로 올려 벗어내고 속옷까지 벗고는 찬 물속, 루이스의 곁으로 갔다. 혹시 누가 본대도 상관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들은 마주보고 앉아 뒤로 몸을 눕혔다. 얼굴과 손과 팔을 빼면 두 사람 다 하얬고 자족한 듯 조금 분 몸이었다. 물살이 손가락 밑으로 모래를 밀어내는 것이 느껴졌다.
-알라딘 eBook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중에서 - P1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