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양극화는 정치적 양극화로 이어지고, 정치적 양극화가 심한 곳에서는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책에 대한 반대 진영의 반발도 컸다. 봉쇄 조치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단순히 음모론이나 개인의 자유라는 키워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팬데믹으로 세상이 혼란해진 게 아니라, 이미 혼란스러운 세상이 팬데믹이라는 창을 통해 조금 더 뚜렷이 드러났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 <오래된 유럽>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4186 - P75
스위스에서는 개인의 권리가 거의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여겨진다. 정부의 권한은 각종 법으로 까다롭게 제한돼 있다. 국민투표는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고, 이 때문에 스위스는 직접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바이러스 억제 조치를 여론에 맡겨도 되는 걸까. 다수의 의견은 늘 옳은가.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에서도 개인의 권리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일까. 그렇다면 대체 연대란 무엇일까. 철저히 다수결의원리로 작동하는 국민투표와 포퓰리즘의 차이는 뭘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협상, 경제적 지원, 시민 의식 등 모든 방면의 협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이익이나 정치적 입장에 충실한 개인들의 투표 결과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절대적인 것인 양 신성시돼선 안 된다(스위스 국민투표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 <오래된 유럽>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4186 - P78
백신은 ‘뉴 노멀’이 아니라 현재 서구 사회가 번성하는 기반이 된 과학과 합리주의의 상징이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인 백신을 만들어낸 곳에서 21세기에 안티 백신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졌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 <오래된 유럽>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4186 - P78
두 세기쯤 전인 1798년, 영국의 시골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는 당시 만연했던 천연두에 대해 연구하던 중 소에게 주목했다. 소에게 일어나는 비슷한 병인 우두牛痘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그는 실험을 한다. 8살 소년에게 우두 고름을 접종하고 6주 뒤 천연두 고름을 접종한 결과, 소년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 우두 바이러스에 대항하며 생긴 면역이 나중에 들어온 천연두 바이러스에 맞서 작동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예방접종, 종두법의 탄생이었다. 이 기법은 당시 제너가 우두를 불렀던 이름인 ‘바리올라이 바키나이Variolae Vaccinae’로 널리 알려졌다. 라틴어 소(vacca, 바카)가 예방접종에 제 이름을 남기게 된 사연이다. 예방접종을 뜻하는 현대 스페인어(vacuna, 바쿠나)와 영어(vaccine, 백신)에도 흔적이 남아 있다. - <오래된 유럽>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4186 - P82
백신의 중요성, 안전성, 효율성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나라로 한국이 꼽힌다(함께 꼽힌 나라들은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필리핀이다). 논문은 한국의 인터넷 커뮤니티 ‘안아키’를 언급한다. ‘안아키’가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의 줄임말이며, 어린 시절의 예방접종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단체라는 설명도 들어가 있다. - <오래된 유럽>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4186 - P85
집단면역은 여러 이유로 백신 접종을 못(안) 받거나, 받아도 항체를 못 만드는 사람까지 보호할 수 있다. 그러려면 인구의 일정 비율 이상이 면역되어야 하는데 그 비율은 질병마다 다르다. 홍역은 95퍼센트, 소아마비는 80퍼센트, 계절 독감은 30~40퍼센트다. 코로나19의 경우 여전히 불명확한 부분이 많다. 초기엔 전문가들이 인구의 70~80퍼센트가 집단면역에 필요한 수치라고 판단했으나 델타 변이 확산 이후 이 가설도 무너졌다. 백신 접종률이 70퍼센트를 웃도는 국가에서도 여전히 감염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서다. 접종률이 70퍼센트를 넘어도 감염이 통제되지 않는 상황은 백신 반대론자들의 ‘백신 무용론’에 그럴듯한 근거를 제공했다. 한편으로는 높은 접종률을 바탕으로 일상으로 복귀를 하되 여전히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이 필요하다는 ‘위드 코로나’ 논의를 확장시켰다. - <오래된 유럽>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4186 - P89
약자를 희생시켜 얻은 집단면역으로 특권층을 보호한 셈이다.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은 먼저 접종을 받는 게 특권이다. 선진국이, 왕족이, 정치인이 새치기를 한다. 거울처럼 반대되는 상황이지만 접종이 ‘힘의 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은 같다. - <오래된 유럽>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4186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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