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하이엠.(✽ L’chaïm. 히브리어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삶을 위하여(to life)’이다. 삶이란 항상 행복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리고 삶 그 자체가 거룩하고 축복의 대상이기에 유대인들은 건배할 때 무언가를 위한 삶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축복한다고 한다.) 삶을 위하여.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80

햇빛 속에서 숨 쉬듯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베개에서 눈을 뗄 수 없다.

내 손가락에서 경련이 일어난다.

아주 쉬울 텐데.

보드라운 면, 폭신한 깃털. 구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아주 쉬울 텐데.

병실이 어두워진다. 햇살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구별되지 않는다. 베개도 아버지의 눈도.

내 어깨가 늘어진다. 나는 조용히 숨을 내쉰다.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92

아버지가 나한테 끝내게 도와달라고 했어.

해 질 무렵 유칼립투스와 카레 향이 나는 길에서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일까? 처음으로 문장에서 멜로디 같은 것이 느껴진다.

아버지가나한테끝내게도와달라고했어.

안은 걸음을 늦추지 않는다.

나는 바싹 쫓아간다. 어찌나 다가갔는지 그녀의 오른쪽 어깨뼈 밑, 파란색 스웨터 실 사이에 갇혀 버둥거리는 조그만 벌레가 보일 정도이다. 안이 갑자기 멈춰 선다. 나는 그녀를 안을 뻔했다.

연한 장밋빛 햇살을 받아 그녀의 얼굴이 훨씬 부드러워 보인다. 아주 가까운 데에서 물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안이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래, 잘한 거야. 나한테 말한 거."

안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지지하는 단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도와줄게."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98

차가운 청진기가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쳤다. 일반개업 의사는 여느 때처럼 미소를 지었다. 의사에게서 좋은 냄새가 났다. 나는 요즘 유행하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았다.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다. 의사는 체온을 내리기 위해 이부프로펜을 처방했다. 의사는 휴식, 또 휴식, 무조건 휴식을 취하라고 당부했다.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104

"아시겠지만 프랑스에서는 뱅상 욍베르(✽ 뱅상은 2000년 자가용으로 귀가하던 중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병원에서 9개월 동안 혼수상태로 있다가 시각, 미각, 후각을 모두 잃고 말도 할 수 없는 채로 머리와 오른손만 겨우 움직이는 전신마비 상태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결국 사고일 3년째 되는 날, 어머니와 의사의 협조로 안락사를 선택했다. 뱅상은 자신이 의료집착행위의 희생양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소생술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강요받았기 때문에 안락사 이외의 다른 선택은 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의료집착행위만 없어지면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는 상당수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목적 없이 생명만 연장하기보다는 치료 중단을 통해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시켜야 하며, 이러한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고 적극적으로 권장할 사안이라는 것이다.)와 샹탈 세비르(✽✽ 전직 교사였던 샹탈은 8년 동안 코 주위가 부풀어 오르면서 얼굴이 비틀어지는 악성종양으로 심한 고통을 받았다. 온갖 약물을 복용하며 치료를 계속했지만, 고통은 가라앉지 않고 증세는 더욱 악화되면서 의료진조차 원인을 알 수 없다며 손을 놓고 말았다. 결국 샹탈은 더 이상의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며 법원에 안락사를 허락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샹탈은 법원의 기각 판결이 내려지고 이틀 뒤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으며 정확한 사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사건 이후로 많이 까다로워졌습니다. 전에는 이런 일에 대해 말이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106

엘리안은 레오네티 법과 수정안(✽✽✽ ‘죽고 싶다, 죽여달라’라는 뱅상의 처절한 외침이 프랑스에서 반향을 불러일으켜 2005년 레오네티 법안을 탄생시켰다. 이 법이 치료를 중단하고 죽도록 내버려두는 ‘소극적 안락사’의 합법화를 불러왔다. 그러나 죽음을 곧바로 야기하고자 독극물을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여전히 허용되지 않는다.)을 설명하면서 그 뒤로 의사들과 환자들은 어쩔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덧붙였다.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107

「소일렌트 그린(✽ 「Soylent Green」, 1973년에 제작된 찰톤 헤스톤 주연의 영화. 지구 환경 파괴로 식량 생산이 중단된 미래가 배경이다. 유일한 식량인 ‘소일렌트 그린’이라는 물질을 생산하는 회사와 그 회사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기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소일렌트 그린의 주원료가 ‘사람’이라는 반전이 있다.)」. 오래전에 본 영화, 그동안 한 번도 이 영화를 생각하지 않았는데 문득 몇 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내가 지어낸 것들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로 선명하다. 끔찍한 미래, 환경 파괴로 천연자원이 고갈된 세상, 생을 끝내기로 결심하고 하얀 클리닉으로 들어가는 에드워드 G. 로빈슨. 그가 창구 앞에 줄을 서 있다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듣고 싶은 음악을 고르고, 아이 침대처럼 좁은 침대에 길게 누워 흰 가운 차림의 남자와 여자가 내미는 물약을 마시고, 전원교향곡을 들으며 마침내 평온하게 잠든다.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129

아버지가 마른기침을 한다.

아버지의 눈이 카메라를 응시한다. 아버지는 준비가 되었다.

사랑하는 내 딸들, 사랑하는 내 손주들…….

아버지는 유연한 몸짓으로 왼팔을 든다.

……오늘 내가 내리는 결정을 너희들이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마치 선거 유세를 하는 것 같다.

나는 인생을 만끽하면서 살았다. 요컨대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특권을 누렸다…….

나는 웃지 않으려고 뺨 안쪽의 살을 깨문다.

……그리고 내 인생이 종말에 이른 지금 나는 너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다. 그리고 너희들도 아름다운 인생을 살기 바란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리고…….

아버지가 머뭇거린다. 아버지는 무슨 말을 덧붙이려는 걸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녹음이 되고 있어서 나는 어떤 식으로도 아버지의 말을 유도하거나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

……이상이다.

아버지는 팔걸이에 팔을 올리고 작은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는다.

"나 어땠니?"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189

「풀 메탈 자켓」(✽ 「 Full Metal Jacket」, 1987년에 제작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전쟁 영화. 베트남전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담았다.)에 등장하는 교관이 흥얼거리는, 누구나 다 아는 노랫가락에 따라 젊은 신병들이 합창한다.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202

Pourquoi donc a-t-il fallu que j’cède(나는 왜 들어줘야 했을까)

Pourquoi donc a-t-il fallu que j’cède(나는 왜 들어줘야 했을까)

내 손목에서 장바구니가 앞뒤로 흔들린다.

Quand mon père a demandé que j’l’aide(아버지가 도와달라고 했을 때)

Quand mon père a demandé que j’l’aide(아버지가 도와달라고 했을 때)

나는 이제 멈출 수가 없다. 채소 가게, 생선 가게, 빵 가게.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호흡을 가다듬는다.

드디어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간다. 세르주가 있다.

세워총, 쉬어.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203

"「잊혀진 사람들」(✽ 「Los Olvidados」, 1950년 제작된 에스파냐의 감독 루이스 부뉴엘(Luis Buñuel, 1900~1983)의 영화. 도시 빈민가에 사는 아이들의 원초적이고 비참한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220

"I’m singin’ in the rain!(나는 지금 빗속에서 노래를 불러!)(✽✽✽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변하는 할리우드 영화계의 혼란을 경쾌하게 풍자한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의 테마곡 가사.) 빵! 빵!"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220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 잔인한 폭력 묘사와 강간 장면으로 오랫동안 영국에서 상영 금지를 당한 영화이다. 영화 속 주인공 알렉스는 범죄를 저지르면서 진 켈리의 「Singin’ In The Rain」을 부른다.)에 등장하는 알렉스 역의 말콤 맥도웰이 남자를 꼼짝 못하게 하고는 진 켈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남자의 아내를 강간하는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아버지는 웃음이 터졌다.

아버지가 빈 접시를 가리킨다.

"튀김을 더 먹고 싶은데."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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