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요?
아버지는 아내를 보고 싶어 했다. 우리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조금 이따 우리가 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올게요.
네 어머니가 어지간하면.
아버지는 용케 미소를 짓는다. 거의 웃는 얼굴이 될 정도로.
어머니는 파킨슨병에 이어 수년 전부터 심한 우울증까지 앓고 있다.
우리가 산책을 나가자, 밖에서 점심을 먹자, 어디 구경하러 가자, 하면 어머니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어지간하면.
어머니가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웃었다.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28
아버지가 산소를 공급받고 있다.
아버지는 잠들어 있다.
아버지의 얼굴은 이제 혈색이 없다.
아버지가 갑자기 눈을 뜬다. 초점이 없는 두 눈.
나를 알아봤는지 확신이 없다.
아버지가 콧구멍에 연결된 가는 호스들을 빼려고 머리를 흔든다.
나는 호스들을 다시 끼워 넣는다.
아버지가 호스들을 뽑아버리려고 왼손을 든다.
내가 아버지의 팔을 잡는다. 아버지는 저항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힘이 없다.
아버지의 살이 차갑다. 이스키아에서 태운 구릿빛 피부는 사라지고 없었다.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43
나는 냉장고를 연다.
내 눈높이인 칸에 아버지가 먹다 남긴 샌드위치가 있다.
계속 냉장고에 놔둘 수 없다. 고약한 냄새를 풍길 것이고, 곰팡이가 슬 것이다. 상한 연어에서 지독한 냄새가 날 것이다.
이제는 버려야 한다.
휴지통의 페달을 밟는다. 뚜껑이 올라온다.
나는 얇은 비닐을 통해 아버지가 깨물어 먹은 자국을 본다. 갈색 빵에 반달 자국이 뚜렷이 나 있다.
팔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쓰레기가 들어 있는 휴지통.
버릴 수가 없다.
내 발이 페달을 떠나고 뚜껑이 다시 내려간다. 그리고 탕, 둔탁한 소리가 텅 빈 아파트 안에 울린다.
나는 샌드위치를 손에 든 채로 한동안 꼼짝하지 못한다.
냉동실에 넣어둘까? 이 상태는 유지될 것이다.
샌드위치를 납작하게 눌러서 바닐라 아이스크림 통 위에 올려놓는다.
이제 됐다.
새벽 3시, 고요한 밤.
전자레인지와 오븐에 있는 시간 표시등의 희미한 오렌지 불빛이 주방을 밝혀준다.
냉동실을 열고, 샌드위치를 꺼낸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덩어리를 휴지통에 넣는다.
나는 휴지통 뚜껑에서 손을 뗀다. 뚜껑이 소리 없이 천천히 닫힌다.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46
우리는 아버지의 산소마스크를 벗겼다.
나는 아버지 뺨에 입을 맞춘다. 따갑다.
아버지는 대개 얼굴이 매끄러웠지만 휴가 중에는 이따금 면도를 하지 않았다. 그런 때면 무성한 금빛 털이 햇빛에 반짝이는 것 같았다.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49
7월 14일. 매해 아버지의 생일과 함께 여름 바캉스가 시작되었다. 파스칼은 늘 그 날짜에 생일 선물을 했다. 오래전 동생은 하얀 도자기 밀크 포트를 선물했고, 나는 발자크의 라 플레이아드(✽✽ 1931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펴내기 시작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고전 컬렉션으로 ,전 세계 유명 작가의 소설・철학서를 다루고 있다. 라 플레이아드 총서는 선정 기준부터 편집, 제작까지 모든 면에서 최고의 신뢰를 받는 컬렉션으로 여기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모든 프랑스 문인의 꿈이다. 특히 생전에 이 꿈을 이루는 작가는 매우 드물다.) 판 『인간희극』 총서를 선물했다. 그 열두 권은 사라졌지만, 밀크 포트는 부모님의 냉장고 안쪽 칸에 아직 있다.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54
탁. 밤송이가 벌어지면서 튀어나온 밤 한 개가 내 앞에 떨어졌다. 나는 밤을 주웠다. 매끈거리고 반들거린다. 발톱 모양의 하얀 반점이 있다.
나는 밤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엘뵈프에서 살던 집의 정원에는 나무가 많았다. 밤나무도 몇 그루 있었다. 소꿉동무 마리옹과 나는 초록색 밤송이가 잔뜩 달린 나뭇가지 사이에 숨어서 손가락을 찔려가며 밤송이를 까고 생으로 먹었다. 떫은맛이 나는 생밤을 으드득으드득 씹어 먹다 목구멍에 걸려서 우리는 서로 등을 쳐주었다.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56
아버지가 왼손으로 내 팔을 잡았는데 힘을 주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끝내게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
나는 얼어붙었다. 아버지는 내가 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좀 더 크게 반복했다. 끝내게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59
나는 밖으로 나간다. 해, 공기, 햇빛. 내 뺨에 축축한 것이 묻어 있는 걸 느낀다. 입맞춤할 때의 자국처럼 약간 묻은 아버지의 침. - <다 잘된 거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2570460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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