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는 열차 사고 현장에서 멀쩡한 몸으로 빠져나왔고, 지금 수술실에 있는 사람은 실은 타인일지도, 이를테면 크리스의 지갑을 훔친 도둑일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망상을 억지로 떨쳐내고, 남편이 다리가 절단되는 큰 부상을 입고 극히 위독한 상태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뒤에는, 새롭고 완전무결한 육체를 얻을 수 있다는 소식은 내가 한 망상에 거의 맞먹을 정도로 기적적인 집행유예처럼 느껴졌다.

-알라딘 eBook <내가 행복한 이유>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중에서 - P12

변호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과학기술은 누구에게든완벽하게 정상적인 삶을 제공합니다. 병세가 아무리 위중해도,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부상이 아무리 심각해도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들고, 가용 자원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설령 의사나 의료 기사들이 이 기술을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봉사할 것을 강제받는다고 해도… 방금 말했듯이 예속을 금지하는 법률이 있는 데다가… 흐음, 어떤 식으로든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현 정부는 그게 누구인지를 정하는 최선의 방법은 시장 원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알라딘 eBook <내가 행복한 이유>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중에서 - P21

물론 그의 육체는 이제 죽었다.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맞은 것이다. 눈을 뜨고 불룩해진 배를 내려다보며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뇌리에 떠올렸다. 그의 시체에서 떼어낸 고깃덩어리. 그의 시체의 두개골에서 적출해 낸 잿빛 고깃덩어리.

-알라딘 eBook <내가 행복한 이유>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중에서 - P31

사실, 가장 쉽고 안전한 방법은 크리스가 나의 내부에서 뭔가를 경험하기는커녕 아예 있지도 않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나는 그의 일부를 몸에 보관하고 있을 뿐이고, 그의 클론의 대리모는 다른 일부를 보관하고 있다. 이 두 부분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만 비로소 그는 정말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크리스는 림보❖에 가 있었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상태로.

-알라딘 eBook <내가 행복한 이유>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중에서 - P34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완벽하게 타당한 견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이 관점에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발견한 새로운 진실은 진실 특유의 차가운 열정을 내포하고 있었고, 특유의 조작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유’라든지 ‘통찰력’ 같은 단어로 나를 공략하며, 모든 기만의 종말이 왔음을 설파한다. 그 진실은 날이 갈수록 나의 내부에서 자라나고 있다. 그 힘은 워낙 강해서, 내가 후회하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알라딘 eBook <내가 행복한 이유>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중에서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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