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에는 "지킬 박사의 유언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터슨은 굳은 얼굴로 의자에 앉아 봉투 안 내용물을 살피기 시작했다. 자신이 집행을 책임지기로 했지만, 사실 어터슨은 유언장 작성에 관여하지 않겠다며 거절한 터였다. 그래서인지 유언장은 지킬의 자필로 작성되어 있었다. 의학 박사이자 법학 박사, 왕립 학회의 회원이기도 한 헨리 지킬 박사는 자신이 사망할 경우 모든 재산을 "친구이자 후원자인 에드워드 하이드"에게 상속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또한 자신이 "실종되거나 명백하지 않은 이유로 3개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을 경우"에도 즉시 에드워드 하이드가 지위를 승계하며, 박사의 저택에 함께 지내는 식솔에게 지급해야 할 소액의 금전 외에는 어떠한 채무나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조항도 있었다. 어터슨에게 이런 유언장은 상당히 눈엣가시였다. 관습과 이성을 중시하는 한 인간이자 변호사로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유언장을 보자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아직 ‘하이드’라는 자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도 거슬렸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하이드라는 이름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름밖에 알지 못했던 때에도 충분히 불쾌했는데 싫어할 구실만 더 늘어난 셈이었다. 오랜 세월 시야를 가리던 희뿌연 안개가 걷히면서 하이드라는 괴물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낸 기분이었다.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2647 - P18
창백한 얼굴과 난쟁이처럼 작은 덩치. 확연히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 곤란하지만 분명 기형처럼 보였다. 기분 나쁘게 웃는 얼굴에는 대담함과 소심함이 기묘하게 뒤섞였고, 속삭이듯 쉰 목소리도 부자연스러웠다. 이 모든 것들이 하이드를 부정적으로 느끼게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거부감이나 역겨움, 두려움 등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2647 - P27
결국 나를 파멸로 이끌 그 진실이란,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이네. 내가 둘이라고 한정한 이유는 현재 내 지식으로 그 이상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네. 누군가 이 연구를 이어 갈 테고, 나보다 뛰어난 업적을 이룩하는 사람도 나오겠지. 그러면 언젠가는 인간이란 복잡한 존재이며 불균형적이고 개별적인 존재의 집합체라는 사실이 증명되리라 감히 말할 수도 있지 않겠나.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2647 - P109
내 안에 존재하는 두 자아를 분리하게 될 기적이 가능하리라 믿으면서 기뻐도 했고. 두 개의 나를 두 개의 전혀 다른 자아에 가둘 수만 있다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리라 나 자신을 설득했네. 사악한 나는 정직한 내가 느끼는 죄책감을 잊고 자유로이 살 테고, 정직한 나는 기꺼이 선행을 베풀며 정상을 향해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나. 완전히 타인이 된 사악한 자아의 행동으로 발생할 죄책감과 불명예를 괴로워할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야.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두 괴물이 양심이라는 고통스러운 자궁 속에서 한 몸으로 붙어 지낸다는 건 인류의 저주라고 할밖에. 극과 극을 달리는 이 쌍둥이는 끊임없이 싸워야 할 테니 말일세. 그렇다면 어떻게 이 둘을 분리할 수 있을까?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2647 - P110
그렇다면 나는 순전히 쾌락을 위해 나를 대신할 사람을 구한 최초의 인간일 것이네. 사람들 앞에서는 인자하고 존경스러운 모습으로 당당히 걷다가 순식간에 철없는 개구쟁이로 돌변해 가식적인 껍데기를 훌훌 벗어 던지고 자유라는 바다로 첨벙 뛰어들었어. 게다가 하이드라는 단단한 껍질을 뒤집어썼으니 나는 절대적으로 안전했네.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2647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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