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창문 사이로 비끼는 햇살이 보고 있던 글자를 비춘다. 고개를 들면 창문 사이사이로 높다란 가을하늘과 열매가 떨어지고 낙엽이 진 감나무가 보인다. 어느새 가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여기는 요즘 내가 즐겨 찾는 카페 일일호일이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8
번잡한 길목의 버스정거장 옆에 딱 붙어 있는 일일호일 대문 안쪽으로 처음 들어서는 순간 느껴진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았다. 마당에 깔린 바닥돌을 밟으며 징검다리를 건너듯 몇 발짝 걸어서 나무 계단을 오를 때는 설렜다. 그리고 직감했다. ‘아, 이곳은 공부하기 딱 좋은 곳이구나.’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9
‘학교’를 뜻하는 영어 단어 school이 ‘노는 곳’을 뜻하는 그리스어 schole에서 온 말이라고 하니, 공부는 원래 노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정작 학교를 다니던 시기에는 이런 말이 있다는 걸 몰라서 그다지 많이 못 놀았으니, 이제라도 옛사람들처럼 공부와 놀이를 같은 일로 생각하자. ‘공부는 놀이’라고 타이핑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나는 ‘공부’와 ‘놀이’라는 단어의 만남이 장난 아니게 좋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10
나는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에 따르는 모든 행위를 ‘공부’로 치환하기로 했다. 현재의 삶에 갇혀 더는 생각이 자라지 않을 때는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그 새로운 생각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내겐 뭔가를 배우는 일이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12
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흐르는 물은 구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12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쉬엄쉬엄하더라도 끝을 볼 때까지 계속 간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13
‘공부’라는 요소가 인생에 추가되면 즐길 수 있는 일들의 선택지가 늘어난다. 새로운 바람을 안고 가는 것이 늘 즐겁고 신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무풍지대에서 지내는 건 심심하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어떤 책의 제목처럼,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14
프랑스의 유명 소설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삶을 건축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연소시켜야 할 대상으로 봤다. 인생이란 탑을 건축하듯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것이라고 잠시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활활 태워 없애야 할 대상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 후반기에 이르니 ‘더 미뤄도 좋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카뮈의 말이 옳다는 생각을 해본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17
뭔가를 시작했다 금세 그만둬도 괜찮다. 그 일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꾸준히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하지는 말 것.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친다.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도 내 경우엔 부질없는 일이다. 딱 한 번 해본 다음 배우고 싶은 마음을 살포시 접었던 경우가 있는 반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 꾸준히 즐기는 공부도 있다. 그래서 마음에 담아둔 ‘느리게 가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중도에 멈추게 될까 그것이 두렵다不怕慢只怕站’라는 중국 속담을 되새기며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17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들면 옳은 길을 되찾아 나오면 된다. 가야 할 길이 아니라면 아무리 멀리, 아무리 많이 걸어갔다 해도 미련 두지 말고 냅다 돌아 나오는 게 좋다.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도 많이 걸어간 것이 아까워서 계속 가는 것이야말로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길을 너무 멀리 떠나와서 어디로 돌아갈지 알 수 없을 때는 그 자리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도 속 시원한 해결책이다. 내가 하고 싶어 시작하고, 내가 하고 싶지 않아서 그만두는 건데, 나 아닌 그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겠는가.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21
‘나의 끝은 나의 시작이다’(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녀의 옷감에 자수로 새겨 넣었다는 문장).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22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일본 드라마 제목). 자기 검열을 너무 많이 하면 나중에는 판단력이 흐려진다. 자기 회의도 가끔만 해야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새로운 걸 배우고 싶어질 때는 가볍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 별로 기대하지 않아야 부담이 없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대충 시작했다가 마음에 들면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 선택과 집중의 시기를 지나 균형을 잡게 되면 무엇을 배웠건 그 분야에 관해서는 한결 깊어진 눈빛을 지니게 될 거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24
사람들마다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나는 트인 공간이 주는 공공성을 즐긴다. 혼자 있음에도 외롭지 않고, 여럿이 함께 있지만 따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지만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는 없는, 약간의 제약이 뒤따르는 그 장소성이 내 자세와 태도를 바로잡아줘서 더 좋다. 그렇게 절반쯤 공적인 장소에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공부하고 작업하는 것은 생산적일 수밖에 없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29
그래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싶으면 카페에 간다. 원고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발길이 저절로 카페로 향한다. 일하다가 갑자기 멀쩡하게 잘 정리된 그릇장의 그릇들이나 싱크대 서랍을 다시 정리하고 싶어질 때도 카페에 간다. 집은 완전히 사적인 공간이어서 너무도 편안한 나머지 딴짓을 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꼭 필요한 집안일이 아닌데도 일을 만들어 딴짓을 하고 있다 싶으면 공간을 바꿔주는 게 낫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29
마음에 드는 카페가 있다면, 카페가 아니더라도 집중이 잘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자기만의 방’이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짧은 산책 후 도착하는 경복궁역 근처 던킨도너츠의 문 옆자리, 작년까지 내가 부지런히 드나들었던 동네 카페 일일케이크의 창가 자리, 한낮 오후에 당이 떨어질 때면 우주 최강의 머핀 냄새로 나를 유혹하던 카페 고로롱 ……. 던킨도너츠와 함께 내가 지극히 사랑하였으나 오래전에 사라지고 없는 나의 카페들은 그렇게 ‘마감을 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30
스스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오래 지속하려면 지속적으로 동인動因(이라 적고 ‘떡밥’이라 읽으면 좋을 듯하다)을 공급받아야 한다. 나의 경우에는 친구들과의 협업이 ‘하고 싶었던 일’을 ‘좋아서 계속할 수 있는 일’로 바꾸는 방법이었다. 즐거운 강제성이랄까? 마음 맞는 친구와 근황을 이야기하며 배우는 곳에 함께 가거나, 마음 편한 장소에서 약속을 잡고 함께 책을 읽었다. 한 단위의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처럼.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36
책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 일부러 수소문해서 찾지 않아도 나보다 멋진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36
그래서 두꺼운 책, 어려운 책은 본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낭독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데, 혼자서 낭독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돌려가며 읽으므로 ‘윤독輪讀’모임이 된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40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외국어 공부를 추천하고 싶다. 유학 갈 필요가 없거나 해외 관련 업무를 하고 있지 않아서 외국어를 배워야 할 목표나 명분이 없는 사람에게도 외국어 공부처럼 좋은 게 없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48
외국어 공부는 다른 공부를 하면서도 할 수 있고, 자신의 생활방식에 맞춰 충분히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 공부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49
일주일에 2회 이상의 수업을 정기적으로 부지런하게 들어야 4~5년 후에 높은 수준의 언어지식을 지니게 된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다. 열여섯 개 언어를 말할 줄 아는 다중언어 구사자가 쓴 《언어공부How I Learn Languages》라는 훌륭한 책이다. 그러니 실력이 빠르게 늘지 않는다고 애면글면하지 않아도 된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49
질 들뢰즈의 이 말이 모두에게 울림이 되기를.
헛되이 보내버린 이 시간 안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마지막에 가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배움의 본질적인 성과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53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결과가 너무 불확실해 보이면 피로도가 높아진다. 중간중간 적절한 보상과 성취감을 얻을 기회가 있어야 더 오래 공부를 즐길 수 있다. 이런 방식은 짧은 기간에 기초 단계를 마치고 성과를 내는 걸 좋아하는 내 성격과 맞다. 그래서 어학을 공부할 때는 자격시험(등급시험)을 보거나 방송대에 편입하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55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말했다. "인간은 그 자신의 신화를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외국어 공부 를 하느라 고군분투했던 시간들보다는 물 쓰듯이 아깝게 흘려보낸 시간이 더 많다. 멍 때리는 시간,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도 필요한 법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한 시간도 많다. 이런 내가 신화를 창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방송대를 무난하게 졸업하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58
내가 싫증 내지 않고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유일한 문화 활동은 책과 영화다. 그중 책은 손닿는 곳에 없으면 그 즉시 풀이 죽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외출할 때 가장 먼저 챙기는 게 책인데, 읽고 있던 책 한 권은 물론이요, 여분의 책을 하나 더, 거기다 두 번째 책도 밖에서 다 읽어버릴까 봐 한 권을 더해 도합 세 권의 책을 늘 가방에 넣고 나간다. 혹 얇은 책들만 가지고 나갔다가 역시 읽을거리가 사라지는 난관에 봉착하게 될까 싶어서 한 권 정도는 제법 두께가 있는 책을 고르는 용의주도한 설정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이패드나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기도 하지만, 종이책만 한 즐거움을 주지 못하므로 전자책으로만 출간한 경우 외에는 무조건 종이책을 팔랑팔랑 넘기며 읽는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94
에스페란토는 유럽의 아홉 개 언어에서 가져온 어휘들을 조합한 다음, 각 언어의 공통점과 장점만을 뽑아내 예외와 불규칙이 없는 문법을 자랑하는 언어다. 모음 다섯 자에 자음 스물세 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어서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도 열두 시간만 배우면 기본적인 문법은 거의 다 배울 수 있다.
-알라딘 eBook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지음) 중에서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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