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가을의 따사로움, 빛에 씻긴 섬, 영원한 나신(裸身) 그리스 위에 투명한 너울처럼 내리는 상쾌한 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여자, 과일, 이상……. 이 세상에 기쁨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렇게 따사로운 가을날 작은 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읊으며 바다를 헤쳐 나가는 것만큼 사람의 마음을 쉬 천국에다 데려다 놓는 기쁨은 없다. 다른 어느 곳도 이렇게 쉽게 사람의 마음을 현실에서 꿈의 세계로 옮겨 놓지는 못한다. 꿈과 현실의 구획은 사라지고 아무리 낡은 배의 마스트에서도 가지가 뻗고 과물(果物)이 익는다. 이곳 그리스에서는 필요가 기적의 어머니 노릇을 하고 있는 듯하다.

정오 가까이 되어 비가 멎었다. 태양은 구름을 가르고 그 따사로운 얼굴을 내밀어 그 빛살로 사랑하는 바다와 대지를 씻고 닦고 어루만졌다. 나는 뱃머리에 서서 시야에 드러난 기적을 만끽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버려두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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