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아방가르드 운동 중 하나인 다다는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비록 단명했지만(1916년 취리히의 카바레 볼테르에서 야간 행사로 시작되어 1922년 트리스탄 차라의 희곡 「가스가 들어찬 마음 Le Coeur à gaz」에 대한 격렬한 항의로 사실상 끝나 버렸다) 그 정신은 저 멀리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48
후고 발은 시대의 인물이었고 그의 일생은 20세기의 첫 25년 동안 유럽 사회가 보여 준 열정과 모순을 고스란히 구체화하고 있다. 그는 니체의 저작을 열심히 읽었고, 표현주의 극단의 무대 매니저 겸 희곡 작가였고, 좌파 언론인이었으며, 보드빌 피아니스트였고, 시인 겸 소설가였으며, 바쿠닌, 독일 지식인들, 초기 기독교,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각각 다룬 연구서를 펴냈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는 생애의 이런저런 시기에 당대의 거의 모든 정치적・예술적 관심사에 손을 댄 듯하다. 이토록 많은 활동을 했지만 발의 태도와 관심은 평생 일관되었다. 총체적으로 볼 때 그의 일생은 근본적 진리, 혹은 절대적 리얼리티 속에 자신의 존재를 뿌리내리려는 지속적인 열정과 시도로 요약할 수 있다. 예술가 기질이 넘쳐서 철학자는 될 수 없었고, 철학자 기질이 넘쳐서 예술가는 될 수 없었다. 세상의 운명에도 관심이 많아 개인의 구원에만 몰두할 수 없었고, 너무나 내성적이어서 실천적인 행동주의자는 되지 못했다. 후고 발은 이런 내적・외적 욕구에 답변해 줄 해결안을 얻기 위해 투쟁했다. 아무리 깊은 고독에 빠져 있어도 자신을 사회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아주 힘들게 획득하는 사람이었다. 정체성을 고정하는 법이 없었고, 도덕적 성실성이 너무나 철저해 그 시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아주 무모하고 이상적인 제스처도 스스럼없이 취하는 사람이었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50
『시간으로부터의 탈주』의 프롤로그에서 발은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여 주는 문화적 검시(檢屍)를 해 보인다. 〈1913년의 세계와 사회는 이렇게 보였다. 생활은 완전히 제약을 받았고 족쇄가 채워졌다. (……)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러했다. 현재의 사태에 종지부를 찍을, 강력하면서도 신선한 힘이 과연 있는가?〉 1917년 칸딘스키 관련 강연에서 그는 그러한 생각을 좀 더 긴급하게 말한다. 〈천 년 된 문화가 붕괴하고 있다. 기둥도 대들보도 기반도 더는 없다. 모두 무너져 버렸다. (……) 세계의 의미가 사라져 버렸다.〉 이러한 느낌은 우리에게 새롭지 않다. 그것은 제1차 대전 당시 유럽의 지적 분위기와 근대적 감수성의 기반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줄 따름이다. 그러나 발이 프롤로그에서 추가로 말한 내용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철학은 예술가에게 지배당하는 듯 보인다. 새로운 충동은 예술가에게서 나오는 듯 보인다. 예술가는 재탄생의 예언자인 듯하다. 칸딘스키와 피카소의 이름을 말할 때, 우리는 화가가 아니라 사제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장인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천국의 창조자를 뜻하는 것이다.〉 완전한 재생의 꿈은 황량한 비관론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발은 재생의 꿈과 비관론의 양립에서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못한다. 둘 다 동일한 접근 방식의 한 부분인 것이다. 가장 힘든 시기에 발을 지탱해 준 것은 바로 이 믿음이었다. 그의 초기 극단 작업(〈오로지 연극만이 새로운 사회를 창조할 수 있다〉), 칸딘스키에게서 영향을 받은 예술론(〈모든 예술적 수단과 힘의 통합〉), 그리고 취리히에서의 다다 활동에 이르기까지 이 믿음은 굳건했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52
〈완벽한 회의가 완벽한 자유를 가능하게 한다. (……) 어떤 대상이나 대의에 대한 믿음이 끝장나면 그 대상이나 대의는 카오스로 돌아가고 그리하여 공동의 재산이 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처럼 강력하게 생산된 카오스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변화된 믿음의 바탕 위에 완전히 새로운 건물을 세우기에 앞서 총체적인 철수가 가능한 것이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53
〈이 소리 시에서 우리는 언론이 남용하고 부패시킨 언어를 완전히 포기한다. 우리는 단어의 내밀한 연금술로 돌아가야 한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53
그는 1921년에 쓴 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회주의자, 심미주의자, 수도사, 이 셋은 현대 부르주아지 교육이 철폐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새로운 이상은 이 셋에게서 새로운 요소들을 가져와야 한다.〉 발은 짧은 생애 동안 이 서로 다른 관점들을 종합하려고 애썼다. 오늘날 우리가 그를 중요한 문학인으로 여기는 까닭은, 그가 새로운 해결안을 발견했다기보다 당대의 문제들을 아주 명료하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과감히 맞선 그의 지적인 용기는 휴고 발을 당대의 모범 지식인으로 만들어 준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3533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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