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 선생이 운영하는 건축사무소의 이름은 이로재履露齋다. 대학로에 있는 그의 사무소에 가면, 이 당호가 적힌 제법 큰 현판이 건축가의 책상 뒤에 놓여 있다. 오래되었지만 힘찬 글씨가 눈길을 끈다. 뜻을 풀이하면 ‘이슬을 밟는 집’이다. 『소학』에 나오는 효행을 뜻하는 단어다. 한 선비가 아버지가 기침하시기 전에 웃옷을 걸치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버지가 일어나 나오시면 따뜻해진 옷을 벗어 걸쳐 드린다는 이야기다. 승 선생은 이 현판을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집 설계비 대신 받았다고 한다. 원래는 전라북도 부안의200년 된 고택에 걸려 있던 현판이다. 집은 폐가가 되었고, 유 교수가 현판만 간직하고 있었던 터다. 당시 승 선생이 설계한 유 교수의 집은 그 유명한 수졸당守拙堂이다. ‘큰 솜씨는 마치 서툰 것처럼 보인다’라는 의미다. 유 교수는 『도덕경』에 나오는 사자성어인 대교약졸大巧若拙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알라딘 eBook <아파트 담장 넘어 도망친 도시 생활자> (한은화 지음) 중에서 - P220
한옥의 경우 상량식도 한다. 집의 뼈대가 거의 완성되는 단계에 대들보 또는 마룻보 위에 대공(들보 위에 세워서 마룻보를 받치는 짧은 기둥)을 세우고 집의 제일 꼭대기 나무 부재인 마룻대(상량)를 올리며 축하하는 의식이다. 마룻대에는 집을 지은 내력이나 축원문을 쓴다. 이른바 상량문이다. 마룻대에 쓰기도 하고, 따로 홈을 파서 축원문을 봉인하기도 한다. 옛집을 고칠 때 이런 상량문이 종종 발견되기도 하니 재밌다. 집의 이력을 적어놓은 유산과도 같다.
-알라딘 eBook <아파트 담장 넘어 도망친 도시 생활자> (한은화 지음) 중에서 - P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