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인테리어는 분명 가능했다. 패널 벽을 들어내 죽은 공간이 되어버린 널찍한 구석을 시원하게 넓히고, 지나치게 큰 가구를 적당한 크기로 교체하고 다닥다닥 붙은 벽장을 뜯어낼 수도 있었다. 조금만 칠을 새로 하고 묵은 때를 벗겨 내고 공들여 잘 정돈하면 아파트는 몰라보게 멋질 수 있었다. 창에는 붉은색과 녹색의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멋들어진 복사판 해도 아래 한쪽 벽 길이만큼 기다란 벼룩시장에서 산 흔들거리는 오크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군데군데 이가 빠지긴 했지만, 청동으로 테두리를 두른 제2제정 시대의 작은 마호가니 책상도 있었다. 책상을 나누어 왼쪽은 실비, 오른쪽은 제롬이 썼다. 붉은색 압지를 깔고 유리 케이스와 연필꽂이는 함께 썼다. 이것 말고도 구식 주석 상감 유리 램프라든가 휴지통으로 쓰는 10리터들이 합판 곡물통, 모양이 각각인 안락의자 두 개, 짚으로 짠 의자, 투박한 스툴이 있었다. 그들만의 재기 넘치는 분위기로 가득한, 깨끗하게 정돈된 집에서 따뜻한 우정, 함께 살아가며 일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었다.

-알라딘 eBook <사물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중에서 - P19

임시방편인 상태가 현재를 완전히 지배했다. 기적만 바랄 뿐이었다. 건축가, 인테리어업자, 미장공, 배관공, 카펫업자, 페인트공을 부른 다음 자신들은 유람선 여행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돌아와서는 완전히 새롭게 정돈되고 변신한 아파트, 믿을 수 없을 만큼 넓어져 이상적으로 변신한 아파트, 꼼꼼하게 신경 쓴 구석구석, 접이식 칸막이, 미닫이문, 눈에 띄지 않게 제작된 효율 좋은 난방 기구, 감쪽같이 감춰진 전기 시설, 고급스러운 가구들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달콤하게 빠져드는 부푼 몽상과 달리 실제로 그들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객관적 필요와 재정 상태의 절충을 꾀한 어떤 이성적 계획도 끼어들지 못했다. 무한한 욕망만이 그들을 압도했다.

-알라딘 eBook <사물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중에서 - P20

아마도 자라온 환경에 영향을 받은 탓일 것이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친구, 동료, 그들이 몸담은 세상이 전부 그러했다. 그들은 단번에 너무 탐욕스러워진 것이리라. 그들은 지나치게 빨리 가고자 했다. 세상의 물건이란 물건은 모두 그들의 것이어야 했고, 소유의 기호들을 계속 늘려야 했다. 그들은 추구해야만 했다. 차츰 부자가 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부자였던 것처럼 살 수는 없었다. 그들은 안락한 가운데 미를 추구하며 살고 싶었다. 그들은 목청을 높이며 감탄하곤 했는데, 이것이 바로 부자가 아니라는 제일 확실한 증거였다. 몸에 배서 너무나 당연한 것, 몸의 행복에 따르기 마련인, 드러나지 않고 내재하는 진정한 즐거움이 그들에게 부족했다. 그들의 즐거움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사치라 부르는 것은 지나칠 정도로 돈을 전제한 것이었다. 그들은 부(富)의 기호에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들은 삶을 사랑하기에 앞서 부를 사랑했다.

-알라딘 eBook <사물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중에서 - P22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경험이 쌓이면서 그들도 과한 열기를 어느 정도 잠재울 줄 알게 되었다. 기다리는 법도, 적응해 가는 법도 배웠다. 취향은 더 확실하고 균형 잡힌 방향으로 서서히 자리 잡혀 갔다. 욕망은 성숙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탐욕은 분노의 성격을 점차 벗었다. 파리 뒷골목을 산책하면서 골동품 가게 앞에 발을 멈춰도 이제는 도자기 세트나 성당 의자, 불룩한 유리 항아리, 구리 샹들리에에 탐닉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상형으로 삼은 집이라든가 완벽한 안락함, 행복한 삶에 대해 간직하고 있는 상(像)에는 여전히 유치하고 자기 만족적인 부분이 많았다. 그들은 당시 유행이 칭송하는 물건에 열을 올렸다. 그들이 좋아하는 에피날 지방의 모사본, 영국식 판화, 마노, 유리 섬유, 새롭게 디자인한 원시풍의 자잘한 물건들, 과학적 발명품 같아 보이는 가전제품들은 자코브 가나 비스콘티 가에 들어서기만 하면 어느 진열대에서든 발견할 수 있었다. 여전히 이것들이 갖고 싶었다. 그들은 유행의 첨단을 걸으면서, 심미안으로 정평이 나고 싶은 당장의 욕구를 충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지나친 흉내 내기는 점차 시들해져 갔다. 자신들이 삶에 대해 품었던 공격적이고 요란하며 종종 유치하기까지 하던 추구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되면서 느긋해졌다. 애지중지하던 요술 거울, 나무 작업대, 형편없는 소형 모빌, 방사계, 형형색색의 돌멩이들, 마티유 식의 사인이 들어간 황마(黃麻) 화판 같은 것들을 불태워버렸다. 점점 자신들의 욕망을 제어하게 되는 듯했다.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은 분명했다. 자신들이 바라는 행복과 자유가 무엇인지 알았다.

-알라딘 eBook <사물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중에서 - P23

제롬은 스물넷, 실비는 스물둘이었다. 둘 다 사회심리 조사원이었다. 딱히 직업이라고도 전문 분야라고도 할 수 없는 이 일은 여러 주제를 놓고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신경을 온통 집중해야 하는 까다로운 일이었지만, 재미가 없지는 않았고 비교적 보수가 괜찮은 편인 데다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자유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알라딘 eBook <사물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중에서 - P25

제멋대로 흐르게 놔둔 시큰둥한 성향이 어디로 자신들을 이끌지 알지 못했다. 시간이 그들을 대신해 선택해 주었다. 물론, 그들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무엇인가에 온전히 자신을 바치고 싶었을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천직이라 부르는 내부의 강력한 이끌림을 느끼며, 그들을 뒤흔들 만한 야망, 충만케 해줄 열정을 느끼며 자신을 쏟아붓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그들은 단 하나만을 알았다. 더 잘살고 싶다, 이 욕망이 그들을 소진했다.

-알라딘 eBook <사물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중에서 - P25

도통 알 수 없는 주저함과 애매한 침묵, 은근한 암시 중 그들이 탐색해야 할 길을 분별할 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만국 공통의 ‘흠’이 의미하는 숨은 뜻을 간파하고, 인터뷰 상대의 말에 추임새를 넣어 신임을 얻고,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서 이야기를 독려하고 답을 유도하며, 심지어 은근한 압력까지 넣는 진정한 의미의 마술 같은 인터뷰 스타일을 갖게 되었다.

-알라딘 eBook <사물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중에서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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