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의 삶은 편하고 간단할 것이다. 사는 데 필요한 모든 성가신 의무와 문제가 자연스레 풀릴 것이다. 아침이면 일하는 사람이 올 것이다. 보름마다 포도주, 올리브유, 설탕이 배달될 것이다. 문장(紋章)이 찍힌 파란 타일이 깔린 널찍하고 환한 부엌에는 황금빛 아라베스크풍 자기 접시들이 반짝이고, 사방에는 붙박이 찬장들이 있고 중앙에는 근사한 흰색 나무 식탁, 등받이 없는 의자, 긴 의자가 놓여 있을 것이다. 아침마다 샤워를 끝내고 옷을 대충 걸친 채 이곳에 와서 앉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식탁에는 도기로 된 커다란 버터 그릇, 마멀레이드 단지, 꿀단지, 토스트, 반으로 자른 자몽이 놓일 것이다. 이른 아침, 5월의 긴 하루를 여는 시작일 것이다.
-알라딘 eBook <사물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중에서 - P14
그들은 우편물을 뜯어보고 신문을 펼칠 것이다. 첫 담배에 불을 붙일 것이다. 나갈 것이다. 아침 일은 고작 몇 시간이면 끝날 것이다. 그들은 점심때 만나 마음 내키는 대로 샌드위치나 그릴 요리를 들 것이다.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느린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집은 정돈되는 일이 거의 없지만, 오히려 제멋대로인 모습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들은 개의치 않을 것이다. 살아가는 모습이니까. 그들은 이 같은 안락함을 당연한 것, 애초에 있었던 것, 자신들의 천성처럼 여길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펼쳐 보는 책, 쓰고 있는 글, 듣는 음반, 매일 나누는 대화에 신경을 쓸 것이다. 그들은 오래 일한 후, 저녁을 들거나 아니면 외식을 하러 나갈 것이다.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산책할 것이다.
-알라딘 eBook <사물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중에서 - P15
책으로 둘러싸인 벽들 사이에서, 오로지 그들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사물들에 둘러싸여, 멋지고 단순하며 감미롭게 빛나는 사물들 사이에서, 삶이 언제까지나 조화롭게 흘러가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삶에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다. 홀연히 모험을 찾아 나서기도 할 것이다. 어떤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원한이나 쓰라림, 질투를 맛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소유와 욕망은 언제나 모든 지점에서 일치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균형을 행복이라 부를 것이고, 얽매이지 않으면서 현명하고 고상하게 행복을 지키고, 그들이 나누는 삶의 매 순간 이를 발견할 줄 알 것이다.
-알라딘 eBook <사물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중에서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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