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문은 마룻바닥에 밝은색 양탄자가 깔린 침실로 나 있을 것이다. 커다란 영국식 침대가 방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오른편에는 창문 양옆으로 폭이 좁고 높은 두 단짜리 선반에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는 책 몇 권과 앨범, 카드, 작은 화분, 목걸이 같은 잡동사니가 놓여 있을 것이다. 왼편으로는 오래된 참나무 옷장, 나무와 동(銅)으로 만든 옷걸이 두 개가 세련된 줄무늬 회색 실크로 싼 낮은 안락의자와 화장대를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침실에 딸린 욕실의 살짝 열린 문틈으로 두꺼운 목욕 가운, 백조 모양으로 구부러진 동 수도꼭지, 커다란 회전 거울, 영국제 면도기 한 쌍과 녹색 가죽 케이스, 갖가지 작은 병들, 뿔 자루가 달린 빗, 목욕 스펀지가 보일 것이다. 침실 벽에는 인도 사라사 벽지가 발라져 있고, 침대에는 스코틀랜드 양모 담요가 깔려 있을 것이다. 세공 무늬를 넣은 침대맡 탁자 위에는 옅은 회색 실크 갓이 달린 은촛대, 네모난 작은 추시계와 함께 장미 한 송이가 유리병에 꽂혀 있고, 탁자 아래 받침에는 신문, 잡지 몇 권이 놓여 있을 것이다. 조금 떨어진 침대 발치로 묵직한 가죽 풋스툴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창문에는 구리 커튼 봉에서 반투명 커튼이 미끄러지듯이 흘러내리고, 두꺼운 회색 양모의 이중 커튼이 반쯤 쳐져 있을 것이다. 어슴푸레한 빛 가운데서도 방은 환할 것이다. 정리가 잘된 침대의 머리맡 벽에 알자스풍 작은 벽 램프 사이로 폭이 좁고 기다란 흑백사진이 걸려 있을 것이다. 창공으로 비상하는 새의 사진은 판으로 찍어낸 듯 완벽해서 선뜩할지도 모른다.

-알라딘 eBook <사물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중에서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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