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6월 5일 제3차 중동전쟁이 터졌다. 나세르 대통령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고 아카바만을 다시 봉쇄해 이스라엘에 대한 석유 공급을 끊은 것이 발단이었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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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아라파트가 PLO 의장이 됐다. 아라파트는 1929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출신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카이로대학에서 토목학을 공부했다. 나세르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1952년에 ‘팔레스타인학생연합’ 의장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고, 잡지 『팔레스타인의 소리』를 발간해 청년 지도자로서 입지를 굳혔다.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에 이집트군 장교로 참전한 뒤 쿠웨이트에 건설 회사를 설립해 투쟁 자금을 모았으며, 1959년에는 팔레스타인민족해방운동(FATAH)라는 정치단체를 창설했다. FATAH는 이스라엘의 공공기관과 산업시설을 파괴하는 테러 활동으로 명성을 얻었고 제3차 중동전쟁에 아랍연합군으로 참전했다. 아라파트는 FATAH를 기반으로 PLO 의장이 됐으며 팔레스타인 혁명군의 최고사령관을 겸했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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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일어났다. 1970년 공군참모총장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하페즈 알아사드(Hafez al-Asad) 시리아 대통령과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탱크와 전투기 등 소련 무기를 사들이고 전술 지원을 받아 전쟁을 준비했다. 그들은 아랍 세계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자국민의 정치적 지지를 얻을 목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용했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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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1월 13일, 유엔총회가 ‘팔레스타인 문제’를 놓고 토론을 열었다. 아라파트는 머리에 두건을 두른 게릴라 차림으로 뉴욕 유엔 본부에 나타났다. 그가 회의장에 들어서자 미국 대표를 제외한 참석자 전원이 기립해 박수를 쳤다. 연단에 선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에 과도적으로 유대인·기독교인·무슬림의 국가를 각각 수립한 다음 하나의 민주국가로 나아가자는 PLO의 기본 견해를 밝히고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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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꿈을 꿀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땅과 재산, 민족의 모든 권리를 되찾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존재를 직시하는 현실적인 사람으로서 나는 꿈이 언제나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민주국가 건설에 동참한다는 의사를 자유롭게 결정할 때까지 우리는 조그만 국토에 만족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한 손에 올리브 가지를, 다른 한 손에 자유를 위한 전사(戰士)의 무기를 들고 왔습니다. 내 손의 올리브 가지를 던져버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우리는 유대교와 시온주의를 구별합니다. 시온주의 침략 책동에는 반대하지만 유대인의 신앙은 존중합니다. 이 위대한 유엔 본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적대적이고 호전적인 데모가 과연 미국의 진정한 의견인지 나는 묻습니다. 팔레스타인 민중이 미국 국민에게 무슨 범죄를 저질렀습니까? 무엇 때문에 당신들은 우리와 싸우려 하는 것입니까? 정당화할 수 없는 적대감은 당신들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미국과 아랍 세계 전체가 더 새롭고 차원 높은 우호관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국인이 알아주기 바랄 뿐입니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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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총회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자결권과 주권을 인정하는 결의 3236조를 채택하고 PLO를 ‘옵서버 단체’로 받아들였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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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은 기독교도가 우세한 지역이었는데 프랑스의 위임통치 기간에 종교적·정치적 갈등이 커지면서 1957년 기독교도와 무슬림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 1958년에 친미 정권을 보호하려고 미군이 수도 베이루트 일대를 점령했다. 30만 명 넘는 팔레스타인 난민이 유입되면서 레바논의 정치적 혼란은 더 심각해졌고, 1975년 봄 PLO 게릴라가 베이루트의 교회에서 기독교도를 학살하는 사건이 터지자 내전으로 번졌다. 1982년 6월 이스라엘군이 PLO 기지를 제거한다며 레바논을 침략해 베이루트를 점령하고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난민을 학살하는 참극을 벌였다. 본부를 레바논에서 북아프리카 튀니스로 옮긴 PLO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로 한정하는 ‘미니 팔레스타인 구상’을 수용하고 요르단을 비롯한 온건파 아랍 국가와 관계를 개선했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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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에는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다. 이란은 페르시아의 후예국이고 종교적으로도 시아파가 다수여서 팔레스타인 문제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혁명의 원인은 석유가격 급변과 물가 폭등으로 인한 경제난, 팔레비 왕조의 부패와 독재였다. 프랑스에 망명 중이던 종교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가 팔레비 정권의 대미 종속과 폭정을 강력하게 비판하자 정부는 친정부 언론을 동원해 그를 비난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군이 항의 시위를 벌인 신학생들을 학살했고, 격분한 민중은 폭동을 일으켰다. 정세가 혁명으로 치닫던 1979년 1월 팔레비(Pahlevi) 왕이 이란을 떠났다.
혁명정부는 국민투표로 왕정을 폐지하고 이슬람공화국을 수립했다. 그러나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을 하나로 융합한 나라가 진정한 공화국이 되기는 어려웠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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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정세는 1993년 9월 13일 극적인 전기를 맞았다.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와 PLO 아라파트 의장이 백악관 뜰에서 만나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와 웨스트 뱅크의 아랍인 자치권을 인정하고 PLO는 무장투쟁을 중단하기로 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행사를 이끌었고 미국 국무장관과 러시아 외무장관이 보증인으로 참석했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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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협정은 냉전시대 이후 무력이 아니라 협상으로 분쟁을 해결하려 한 첫 시도였다. 요한 외르겐 홀스트(Johan Jørgen Holst) 노르웨이 외무장관은 이스라엘과 PLO의 공식 협상이 벽에 부딪치자 양쪽 밀사를 오슬로의 자택으로 초대해 숙식을 함께하며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냈다. 그래서 서명은 백악관에서 했지만 ‘오슬로 평화협정’이라고 한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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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민중은 1987년 12월 제1차 인티파다(봉기)를 일으켰다. 이스라엘군은 인티파다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수많은 민간인을 살상했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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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인티파다 때 가자 지구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조직한 ‘하마스(Hamas)’였다. 군사조직과 정당의 복합체인 하마스는 PLO는 말할 것도 없고 PFLP보다 급진적이고 전투적이었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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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정부 시한 만료를 앞둔 2000년 7월, 아라파트는 미국의 캠프데이비드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또 한 번의 평화협정 체결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Ariel Sharon)이 아랍 민심에 불을 질러 평화협상을 가로막았다. 무장경호원을 거느린 채 동예루살렘 모스크를 방문해 무슬림을 격분하게 만든 것이다. 웨스트 뱅크와 가자 지구, 인근 국가 난민촌에서 제2차 인티파다가 일어나자 샤론은 군대를 동원해 자치지역을 다시 점령했다. 자치정부의 경찰이 민중봉기에 가세하면서 팔레스타인은 또다시 내전의 불길에 휩싸였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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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팔레스타인 상황을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에게는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김재명 지음, 미지북스, 2019)을 추천한다. 저자는 국제분쟁을 연구한 전직 언론인답게 해박한 역사 지식과 현장에서 취재한 정보를 유기적으로 엮었다. 팔레스타인의 비극에 관한 르포르타주 작품으로 이보다 뛰어난 책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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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평화협정 이후 이스라엘은 웨스트 뱅크와 동예루살렘의 정착촌에 60만 명의 유대인을 더 받아들였다. 2002년부터는 높이 8미터, 총연장 700km가 넘는 장벽을 세우고 있다. 완성하면 웨스트 뱅크의 절반과 주민 3분의 1을 장벽 안에 가두게 된다. 제1차 중동전쟁 직후 100만 명이 채 안 되던 팔레스타인 난민은 무려 500만 명으로 불어났는데, 150만 명은 이웃 나라의 난민촌에 산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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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8월 4일, 린든 존슨(Lyndon Johnson)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민주공화국(이하 북베트남) 수도 하노이 동쪽의 통킹만에서 일어난 군사적 충돌에 관한 정보를 공개했다. 공해를 순찰하던 미군 구축함 매덕스호가 어뢰정 공격을 받았고 항공모함 탑재 전투기가 즉시 반격했다는 것이었다. 미국 공군은 통킹만의 북베트남 어뢰정 기지와 석유 저장소 네 곳을 공습하고 선박 스물다섯 척을 격침했다. 그것은 단순한 군사행동이 아니라 제2차 베트남전쟁의 ‘공식적인’ 시작이었다. 미국 의회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으로 행정부에 ‘전쟁권’을 부여했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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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굴복하지 않는 민족의 땅이다.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어서 고대부터 한자를 사용하는 등 문화적으로 깊고 넓은 영향을 받았고 종종 정치적 간섭과 군사적 침략에 시달렸지만 베트남 민중이 싸우지 않고 항복한 적은 없었다. 그들은 민족의식이 강하고 외세에 맞서 투쟁한 민족영웅을 높이 받든다. 미국 대통령과 국방부 장군들은 베트남 민중을 과소평가했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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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베트남을 셋으로 나누어 지배하면서 중국 윈난성에서 홍하(紅河, 송꼬이강)가 흘러드는 북부는 ‘통킹’, 중부는 ‘안남’, 메콩강 삼각주가 드넓게 펼쳐진 남부는 ‘코친차이나’라고 했다. 베트남에는 50개 넘는 소수민족이 살지만 예나 지금이나 비엣족(베트남족, 킨족)이 인구의 90%를 차지한다. 서쪽에서 베트남을 침략하려면 안남산맥을 넘어야 해서 쉽지 않다. 남쪽이나 북쪽에서 쳐들어갈 경우 보급선이 한없이 길어져 장기전을 수행하기 어렵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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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제도를 이식해 식민지를 수탈했다. ‘인도차이나은행’을 내세워 경지의 20%를 장악하고 소출의 50%를 소작료로 징수했다.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해 고무·커피·차·면화 농장을 경영했다. 주석·텅스텐·아연·납·구리·철 등 광물을 마구잡이로 채굴했으며 담배·술·유리·종이를 독점 공급했다. 베트남의 토착 수공업과 제조업은 완전히 몰락했다. 통킹·안남·코친차이나에 서로 다른 통치제도를 세우고 응우옌 왕조의 왕족과 관리, 촌락의 장로와 지주, 가톨릭 신도를 하수인으로 삼았다.■ 제국주의 수탈정책의 내용과 형식은 ‘만국 공통’이었다. 영국·프랑스·벨기에 같은 유럽 민주주의국가든 천황제 일본이든 잔혹하기는 매한가지였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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