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형성하고 해체하는 시간에 맞서는 전략이 적어도 두 가지는 있다. 순간을 즐기거나 지속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다. 고대인들은 이 두 가지 전략을 모두 중요시해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명령을 내렸다. 당장 죽을 것처럼 살고,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라.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88

첫째 명제부터 보자. "삶의 방식에 완전함을 부여하는 것은 하루하루를 생의 마지막 날처럼 보내는 자세"라고 스토아주의자들은 말했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88

오늘 밤 자다가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두 발 뻗고 잠들지 못한다. 그러한 명령은 실제 경험과 괴리된 간결성의 독단론에 입각해 있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낙관하지 않으면, 아직은 시간이 있고 상황은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없다면, 기쁨을 느낄 수 없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면 도저히 그날 밤 관에 들어가 눕듯 침대에 누울 수 없을 것이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89

"하루하루를 삶의 완성처럼 살아라"4라는 말은 그만큼 현명하게 살라는 뜻이지만, 최대한 즐기면서 살라는 뜻이기도 하다. 세상은 처음 보듯 바라보고 처음 사는 듯 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듯 보고 마지막으로 사는 듯 살아야 한다. 일단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새로워져야 한다. 그리고 생을 언제라도 빼앗길 수 있는 재화처럼 여기고 지금 당장 누려야 한다.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섬광 같은 순간, 시간의 지속으로부터 훔쳐낸 순간이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90

뭔가를 외워서 달달 읊다 보면 깨달음이 번득 일어날 때가 있다. 자기의 창조와 재창조는 언제나 모방한 형식과 새로운 형식 사이의 투쟁에서 나온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93

과거는 한낱 벌레 끓는 시체가 아니다. 과거는 "보고서가 잔뜩 든 커다란 서랍장"이자 우리를 위협하는 "시든 장미로 꽉 찬 안방"(보들레르)이다. 하지만 신기한 물건이 가득 든 궤짝처럼 잠깐은 마법이 통한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94

세월이 가면 과거도 달라진다. 과거가 떠오를 때마다 우리는 거기에 감정의 색깔을 덧입힌다. 그래서 소설가들이 특히 좋아하는 시간 역설이 발생한다. 우리는 미래를 그리워하고 지나간 시간을 예언한다. 과거는 끊임없이 현재에 다짜고짜 난입해서는 전에 없던 밀담을 꾀한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97

프랑수아 모리아크는 늙음의 비극이란 한 인생의 총합이 되는 것, 숫자 하나 바뀌지 않는 최종 합산 결과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6 총합 자체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체는 움직이는 모자이크화처럼 늘 헤쳤다 모이기를 반복하며 재구성된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97

망각은 인간의 뇌라는 절묘한 지우개 덕분에 얻을 수 있는 희열의 조건이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98

생의 초년기처럼 살면서 늙어버린 자아의 한계를 깨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샘에 뛰어들라. 몸은 늙되 마음은 늙지 말라. 세상과 쾌락에 대한 감각을 지키고 걱정 많은 속내와 혐오라는 이중의 함정을 피하라.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101

영국의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는 "인생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마지막 날까지도 연습 중일 테고, 서툴게 한 음 한 음 연주해낼 것이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101

가끔은 우리 안의 여러 세대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런 대화가 과거의 어린아이, 지금의 어른, 앞으로 될 노인을 불러내기도 하고 쫓아내기도 한다. 이 아바타들은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가? 유령? 예측? 레버넌트? 중세 이후로 유령은 우연히 마주한 정체불명의 죽은 자, 레버넌트는 산 자와 가까운 사이였다가 이미 죽은 자로 구분되어왔다.9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 청소년기의 나도 이방인처럼 낯설지 않은가. 과거의 나는 오랜만에 만난 이보다 불쑥 나타난 낯선 이에 더 가깝지 않은가. 다양한 세대들 사이의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은 생이 최저수위를 지킨다. 그 안에서 여러 목소리가 공존하면서 뜻을 같이하다가 갈라지기를 반복하면서 불화와 화합, 완고함과 순진함이 공존한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103

우리는 어쩌다 보니 생의 꼭대기까지 올라왔고 이제 다시 내려갈 수는 없다. 지금까지 걸어온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생은 종종 사다리에 비유되는데 이 사다리는 아무리 위로 올라가도 어느 벽에도 기대어 있지 않고 허공에 덩그러니 솟아 있다. 까마득한 절벽에서 떨어지면서도 페달 밟듯 다리를 계속 움직이는 만화영화 속 인물들처럼, 우리는 영원히 멈추지 않을 태세로 계속 올라가야 한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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