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자 이대열에 의하면 생명의 중요한 진화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메커니즘이 ‘분업과 위임’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다세포 생명체가 등장할 때 체세포와 생식세포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업을 들고 있다. 생식세포가 번식 기능을 완전히 도맡아 하게 됨으로써 체세포는 번식 이외의 모든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체세포는 개체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기 복제라는 생명의 근본적인 기능을 생식세포에게 일임한 것이다. 이같이 생식세포와 체세포가 분업을 하면서부터 생명체의 진화 속도가 빨라질 수 있었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47187 - P335
이같이 인류는 오랫동안 주거와 종교 기능이 섞여 있는 공간인 동굴이나 움집에서 살다가 어느 순간 종교 기능만 가진 건축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기원전 1만~8천 년경에 만들어진 ‘괴베클리 테페’다. 괴베클리 테페뿐만 아니라 지구라트, 파르테논 신전, 판테온과 같은 종교 건축은 인간 사회의 진화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47187 - P338
건축의 분업화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의미 있는 건축 내의 분업은 ‘온돌과 아궁이의 분리’다. 인류 최초의 집을 보면 모닥불로 난방도 하고 음식도 해 먹었다. 취사할 때의 불을 난방에 사용하는 행위는 수천 년 동안 지속되었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온돌이 자리를 잡았지만, 이 시기에도 부엌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그것이 안방의 구들을 데우는 식의 ‘취사 + 난방’의 방식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석유곤로’가 도입되면서부터 취사가 난방에서 분리되기 시작했다. 석유곤로의 도입은 엄청난 에너지 혁신이다. 선사 시대부터 우리는 에너지를 항상 장작, 석탄, 연탄 같은 고체 연료에서 얻었다. 그러다가 곤로를 통해서 석유라는 액체 에너지원이 최초로 쓰이게 된 것이다. 이렇듯 취사를 하는 불과 난방을 하는 불이 분리되면서 우리 사회는 급속하게 진화하게 된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47187 - P339
도시가 아직 고밀화되지 못한 상태였고 상인을 중심으로 한 신흥 계급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농민 중심으로 진행된 1894년 ‘동학혁명’은 실패한다. 하지만 1970년대를 거치면서 비로소 우리도 보일러 덕분에 12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를 건설할 수 있었고 1980년대에는 많은 국민이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 고밀화된 도시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1987년 6월항쟁은 성공한다. 이런 내용의 사회학 논문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건축적으로 유추해 보면 도시 고밀화와 사회 진화는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보인다. 도시의 고밀화는 신흥 계급을 만들고 사회의 민주화와 진화를 이루어 낸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변화는 ‘온돌과 아궁이’가 분리되면서 시작된 일이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47187 - P341
건축적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이유는 우리나라의 ‘온돌’ 난방 시스템 때문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도시의 고밀화는 신흥 계급을 만들고 근대화로 이어진다. 온돌을 사용한 우리나라는 단층짜리 주거지에 머물 수밖에 없었고 고밀화 도시를 만들 수 없었다. 아마 일본도 우리의 온돌 시스템을 수입하였을 테지만 잦은 지진으로 구들장이 내려앉아서 무거운 온돌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가벼운 다다미방에 ‘화로’를 놓는 난방 시스템을 사용하였다. 덕분에 일본인들은 우리보다 수백 년 앞서서 2층집을 지을 수 있었다. 몇 백 년 전에 지어진 교토의 주거에 이미 2층짜리 주거 형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밀화된 도시 덕분에 두터운 상인 계층이 생겨났고, 중국의 도자기 공장이 파괴된 틈을 타서 일본은 유럽으로 도자기도 수출하였다. 이런 배경으로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개항을 한다. 아마 일본에 지진이 없어서 온돌을 사용했다면 상인 계층도 일찍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고, 도자기 수출도, 근대화도 우리보다 늦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47187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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