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페리는 한 시간 후에나 출발하기 때문에 어밀리아는 느긋이 시내를 돌아보며 항구로 걸어갔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앞 청동 명판에는 이 건물이 앨리스 여관이었던 시절 이곳에서 허먼 멜빌10이 여름을 보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어밀리아는 휴대폰을 치켜들고 명판이 나오게 셀카를 찍었다. 앨리스 섬은 제법 근사한 곳이지만, 조만간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다.

-알라딘 eBook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중에서 - P24

에이제이는 남아 있는 손님들을 쫓아내고(특히 아무것도 안 사면서 네시부터 진을 치고 잡지를 죄 들쑤시는 무슨 유기화학 스터디그룹인가 하는 사람들에 짜증이 났다. 분명 그 사람들 중에 화장실 변기를 막히게 한 범인이 있었다) 말만 들어도 우울한 작업, 즉 영수증 정리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주거지인 위층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그는 냉동 빈달루 한 봉지를 뜯어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겉포장에 쓰인 대로 9분에 맞춰 돌렸다. 전자레인지 앞에 서 있는데 나이틀리 출판사에서 온 여자가 생각났다. 1990년대 시애틀에서 날아온 시간여행자 같았다. 닻 모양이 프린트된 방수 덧신과 꽃무늬 할머니 드레스, 보풀이 일어난 베이지색 스웨터, 어깨까지 내려온 머리칼은 부엌에서 남자친구가 잘라줬을 것 같다. 여자친구일까? 아니, 남자친구다. 에이제이는 단정지었다. 커트 코베인과 결혼할 무렵의 코트니 러브가 생각난다. 사나운 장밋빛 입은 ‘어떤 놈도 날 해치지 못해’라고 말하지만, 여리고 푸른 눈은 ‘그래 넌 날 해칠 수도 있고 아마 해칠 거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그 커다란 민들레 같은 아가씨를 울리고 말았다. ‘자알했군, 에이제이.’

-알라딘 eBook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중에서 - P26

세 잔을 비운 후 에이제이는 식탁에 엎어진다. 그는 백칠십 센티미터의 키에 몸무게는 육십삼 킬로그램밖에 나가지 않고, 냉동 빈달루의 영양도 섭취하지 않았다. 오늘밤 그의 독서 진도는 한 페이지도 나가지 않을 것이다.

-알라딘 eBook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중에서 - P29

거 왜 잘나가는 소설들 있잖아요, 별 중요하지도 않은 조연을 얼마간 쭉 따라가서 포크너식 확장성을 과시하는. 작가가 소소한 인물들까지 얼마나 신경쓰는지 보라고! 평범한 사람인데!

-알라딘 eBook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중에서 - P32

"만약 이게 단편이라면 이쯤에서 끝나겠죠. 조그만 반전이 일어나고 끝. 바로 그래서 산문의 세계에서 단편만큼 우아한 게 없다는 거예요. 만약 레이먼드 카버라면 당신은 내게 어줍잖은 위로를 표하고 어둠이 깔리며 모든 게 마무리되겠지. 하지만 지금 이건…… 아무래도 장편소설 같은 느낌이 더 드는군요. 그니까 감정적으로 말입니다. 끝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죠. 이해가 갑니까?"

-알라딘 eBook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중에서 - P33

"아, 그런가. 난 그냥…… 잠깐, 고등학교 때 읽은 것 중에 경찰이 나오는 단편이 하나 있었어요. 일종의 완전범죄 같은 건데, 그래서 기억을 하나 봐요. 이 경찰이 자기 아내한테 살해당해요. 무기는 냉동 소고기였고 범행 후 여자는 그 고기를 다른 경찰들한테 먹여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 에이제이가 말했다. "그 단편소설의 제목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이고, 범행 무기는 양의 다리였지."
"맞아요, 그거!" 경관은 꽤나 기뻐했다. "역시 모르는 게 없으시네."

-알라딘 eBook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중에서 - P33

에이제이는 니콜이 그 어처구니없는 까만 새틴 드레스를 입고 현관 앞 기둥을 오른팔로 살짝 감싸안은 채 곱고 시커먼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비극적이게도, 내 아내가 뱀파이어로 변했어."
"가엾은 사람." 그녀는 포치를 건너와 에이제이에게 키스하며 멍 같은 립스틱 자국을 남겼다. "당신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같이 뱀파이어가 되는 것뿐이야. 괜한 저항은 하지 마, 그건 최악의 선택이니까. 당신은 좀더 쿨해질 필요가 있어, 이 너드 양반아. 자, 나를 안으로 들여보내줘."

-알라딘 eBook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중에서 - P35

이 괴상한 이야기는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마을을 소유하는 데서 비롯된 난관들, 부자들이 자기네 생활양식을 사수하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나에 관해 교묘하게 풀어냈다. 피츠제럴드의 진면목이 드러나. 『위대한 개츠비』는 의심의 여지 없는 걸작이지만, 가끔 보면 꼭 토피어리 정원수처럼 지나치게 다듬은 것 같거든. 그에게는 단편이 좀더 널찍하고 실컷 저지레를 할 수 있는 공간이야.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는 매혹적인 정원 요정처럼 살아 숨쉰다.

-알라딘 eBook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중에서 - P36

"아냐! 감성적인 가치는 얼어죽을. 그 책은 엄청난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태멀레인』은 희귀본 계의 호너스 와그너같은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요?"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유격수. 그의 야구카드는 희소가치가 높아 미국에서 가장 값비싼 카드로 꼽힌다.
"당연하죠, 우리 아빠가 야구카드 수집가였거든요." 램비에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귀중한 겁니까?"
말이 생각처럼 속시원히 나오지 않았다. "에드거 앨런 포가 처음으로 쓴 작품이에요, 그가 열여덟 살 때였죠. 오십 부밖에 안 찍은데다 익명으로 출간했기 때문에 극히 희귀한 판본입니다. 표지에 저자 이름이 ‘에드거 앨런 포’가 아니라 ‘어느 보스턴 사람’이라고 되어 있어요. 이 판본은 책 상태와 희귀본 시장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사십만 달러 이상 나갑니다. 한두 해 있다가 경제사정이 영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면 경매에 내놓을 계획이었는데. 가게를 그만 두고 경매수익금으로 먹고 살 계획이었다고요."

-알라딘 eBook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중에서 - P40

에이제이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알코올중독자까지는 아니지만 술을 좋아해서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십니다. 담배도 가끔 피우고 즉석냉동 식품을 주식으로 근근이 먹고살죠. 치실은 거의 안 씁니다. 전에는 장거리 달리기를 자주 했지만 지금은 숨쉬기 운동밖에 안 합니다. 혼자 살고, 의미 있는 사회생활과 인간관계가 부족하죠. 아내가 죽은 후로는 일하기도 싫어요."

-알라딘 eBook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중에서 - P44

"내 잘못이야." 에이제이는 두번째 맥주잔을 들이켠 후 말했다. "보험에 들었어야 했는데. 금고에 넣어뒀어야 했는데. 술에 취했을 땐 꺼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걸 어떤 놈이 훔쳐갔든, 내 과실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거지." 진정제와 알코올의 조합은 에이제이를 부드럽게 녹였고, 그는 철학적이 되었다. 대니얼은 피처에서 맥주를 한 잔 더 따라주었다.

-알라딘 eBook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중에서 - P47

"포는 형편없는 작가야, 알잖아? 그 중에서도 『태멀레인』은 최악이지. 따분한 바이런 경6의 아류작. 좀 괜찮은 작품의 초판이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치워버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고. 하여간 나는 수집용 책들은 질색이야. 죽은 종이 뭉치에 다들 왜 그렇게 환장하는지. 중요한 건 거기 담긴 생각이라고, 이 사람아. 그 문장들." 대니얼 패리시가 말했다.

-알라딘 eBook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중에서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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