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우리가 책을 읽는 건 아니다. 삶이 깨어나는 시기, 두 눈이 처음 사물을 보기 시작하는 시기엔 책을 읽지 않는다. 입으로, 양손으로 삶을 집어삼키지만 아직 잉크로 눈을 더럽히지는 않는다. 삶의 시원, 첫 수원(水源), 유년의 개울에서는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을 읽겠다는 생각도, 어느 책의 페이지나 어느 문장의 문을 뒤로하고 쾅 닫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아니, 처음엔 더 단순하다. 어쩌면 더 실성한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무엇과도, 그 무엇에 의해서도 분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우리는 진정한 제약이라고는 없는 첫 대륙에 속해 있다. 이 대륙은 바로 당신, 당신 자신이다. 처음엔 광막한 유희의 땅들이 있다. 발명의 광막한 초원, 첫걸음의 강들이 있다. 어머니라는 대양이, 어머니의 목소리라는 철썩이는 파도가 사방을 에워싼다. 이 모두가 당신이다. 끊김도 찢김도 없는 온전한 당신이다. 쉽사리 헤아려지는 무한한 공간, 그 안에 책은 없다. 책이 들어설 자리, 독서라는 경이로운 애도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알라딘 eBook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중에서 - P7
아이는 학교에 가고, 학생의 신분이 된다. 그런데 이 유실에는 실제로 엄청난 행복이 존재한다. 글을 읽는 첫 경험, 책의 한 페이지를 해독하고 어렴풋한 형체들을 감지할 수 있게 된 첫 경험. 그것은 행복을 넘어서는, 정확히 말해 기쁨이라고 할 만한 무엇이다. 기쁨과 공포라 할 만한 무엇. 기쁨은 어김없이 공포를 수반하고 책들은 언제나 애도를 수반하기 마련이니까.
-알라딘 eBook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중에서 - P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