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주어진 조건 너머를 넘보는 자들은 벌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우리를 다른 고도로 데려가고 기발한 상상의 장소로 끌고 가는 이 이야기가 없다면, 우리는 말 그대로 삶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사소한 행위와 계획을 시적이고 서사적으로 치장한다. 역마살과 소설 같은 공상, 청소년기부터 앓던 이 두 가지 병은 평생을 간다. 우리는 끝까지 우리 인생에 소설처럼 일관된 흐름이 있기를 바란다. "정신은 필요한 것을 획득할 때보다 필요 이상의 것을 획득할 때 한층 더 흥분한다. 인간은 욕구(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바람)의 창조물이 아니라 욕망(삶에 필수적이지는 않은 것을 바람)의 창조물이다."(가스통 바슐라르)24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34
1970년대에 시몬 드 보부아르는 50세 여성을 쓸데없이 여력은 있고 경제적으로는 자립하지 못한 모습으로 그렸다. 해야 할 일은 없고, 애들은 이미 다 키웠고, 할머니 역할은 아직 하고 싶지 않다. 기력과 시간이 남아도는데도 권태의 사막에서 근근이 살아간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야 할 기약 없는 나날을 관조하며 속삭였다. ‘아무도 날 필요로 하지 않아.’"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41
서양에서 삶은 딱 한 번이다. 불교나 힌두교와는 달리, 만회할 수 있는 보충수업이 없다. 그 두 종교는 카르마karma라는 개념에 따라 시험적인 운명을 고안했다. 이번 생에서 우리는 전생의 과오를 갚는다. 그렇게 생을 거듭하면서 우리의 미약함을 정화하다가 열반에 이른다. 동양은 ‘생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고, 서양은 ‘생 안에서’ 해방되고자 한다. 동양에서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 구원이고, 서양에서는 동일한 시간 동안 여러 번 거듭나는 것이 구원이다. 그리스도교도는 영생을 걸고 단판 게임을 하고 힌두교도는 존재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혼이 정화될 때까지 윤회라는 긴 게임을 한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43
반쯤 기계인 존재, 사이보그라고 해야 할까. 50세가 넘으면 다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안경, 보청기, 심장 박동 조절 장치, 판막, 임플란트, 다양한 종류의 전자칩을 달고 산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46
우리는 끊임없이 ‘약속’과 ‘예정’ 사이를, ‘활기’와 ‘엔트로피’ 사이를 오간다. 태어난다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를 약속받는 것이다. 하지만 많이 뽑을수록 색이 흐려지는 복사물처럼, 우리 몸의 세포는 교체를 거듭할수록 회복 능력이 떨어져 우리는 결국 죽고 말 것이다. 약속이 예정보다 우세한 동안은 우리도 끄떡없다. 물론, 우리는 태어나게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는 동안 그 선물은 권리로 변하고, 우리는 최대한 오래 존재를 유지하고자 한다. "술을 마시고 술지게미까지 들이켜는 것이 진짜 술꾼이다.(…) 삶은 못 견딜 건 아니지만 잉여에 불과하다."11 세네카가 남긴 이 단상은 에밀 시오랑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존재의 피로가 어릴 때부터 우리를 덮칠 수 있다 해도, 마지막 한 바퀴까지 완주하는 자세에는 대단한 면이 있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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