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순정만화에는 몇 가지 진입 장벽이 있다. 우선 처음에 언급한 인물들의 얼굴 절반을 차지하는 눈과 베일 듯 날카로운 콧날과 턱이다. 물론 보다보면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심지어 이제는 지하철 신사역에 가득한 병원 광고판을 보면 놀랍게도 그때 그 순정만화형 얼굴이 현실 세계에도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꿈★은 이루어지는 법인가보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78

나름 글재주를 발휘하여 아름답게 쓴 것으로 기억하는데, 굳이 이런 걸 쓴 속내는 축제 때 올 다른 학교 여학생들에게 이걸로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여학생들은 브레이크댄스 추는 애들 보느라 정신없어서 나눠준 영자신문은 바닥에 깔고 앉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난파되어 표류한 선원 이넉이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와 보니 사랑하는 아내는 재혼하여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기에 아내의 행복을 위해 쓸쓸히 돌아서는 자기희생의 이야기인 『이넉 아든』에 대한 나의 심혈을 기울인 영작문은 여학생들의 아름다운 둔부를 바닥의 냉기와 더러움으로부터 안온하게 보호하는 용도로만 쓰였던 것이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80

결국 이야기란 각자의 욕망과 감정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접했던 그 수많은 이야기의 주어는 대부분 남성에 편중되어 있었다. 여성 작가가 쓴 『제인 에어』 『빨간 머리 앤』 『작은 아씨들』이 유독 새롭게 느껴졌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겨우 여성이 주어인 세계를 잠시 엿볼 수 있었다. 아무리 똑똑해도 교사가 되는 것 정도가 꿈의 최대치인 세계 말이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81

어쩌면 나는 동네 만홧가게의 초라한 순정만화 코너에 앉아 나도 모르는 채 세계의 균형을 맞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란 두 가지 성으로 간단히 분류할 수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개인마다 욕망도 감성도 무지개 색깔의 스펙트럼이 미세하게 변화하듯 다양하다. 나와 반대로 만홧가게 안쪽, 공을 던지거나 차고 사람을 때리거나 걷어차는 만화들이 더 취향에 맞는 여학생들도 있었을 것이다.
여학생은 순정만화 코너에, 남학생은 소년만화 코너에 일사불란하게 나뉘어 앉아 가끔 서로를 힐끔거리던 그때의 만홧가게가 떠오른다. 우리는 그곳에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한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82

내가 감히 이렇게 책도 쓰고, 신문에 소설도 쓰고, 심지어 드라마 대본까지 쓰고 할 수 있었던 힘은 저 두 마디에서 나온 것 같다. 나도 내가 김영하도 김연수도 황정은도 김은숙도 노희경도 아닌 걸 잘 알지만, 뭐 어때?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나는 나만의 ‘풋내기 슛’을 즐겁게 던질 거다. 어깨에 힘 빼고. 왼손은 거들 뿐.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87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누리는 타인의 존재를 편하게 받아들일 만큼 수양이 된 사람은 많지 않다. 꼭 누구를 착취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 부를 만끽하는 모습만 꼴 보기 싫은 게 아니다. 정당하게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성취를 누리는 당연한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의도적인 과시로 비쳐 증오를 낳을 수도 있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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