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강조점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다. ‘이기적’을 강조하면 독자들은 이 책이 이기성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오히려 이 책은 이타성에 더욱 주목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 책 제목에서 강조해야 할 핵심 단어는 ‘유전자’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자. 다윈주의의 중심 논쟁은 실제로 선택되는 단위에 대한 것이다. 실제로 어떤 종류의 실체가 자연선택의 결과로 살아남느냐 또는 살아남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 단위는 정의상 다소간 ‘이기적’인 단위가 될 것이다. 이타성은 다른 수준에서 선택되었을지 모르겠다. 자연선택은 종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생물 개체들이 "종의 이익을 위해서" 이타적으로 행동할 것이라 기대해도 좋다. 그들은 개체 수 과잉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출생률을 제한하거나, 미래의 먹잇감을 보존하기 위해 사냥을 자제할지도 모른다. 원래 내가 이 책을 쓰려 했던 것도 당시 다윈주의에 대해 널리 퍼진 이와 같은 오해 때문이었다. - <이기적 유전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26256 - P15
이와 같은 혈연 이타주의는 유전자의 이기주의가 개체 이타주의로 모습을 바꾸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책은 이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와, 다윈 이론이 이타주의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메커니즘으로서 호혜성에 대해 다룬다. 만약 내가 이 책을 다시 쓰게 된다면 자하비/그라펜Zahavi/Grafen의 ‘핸디캡 원리’를 뒤늦게나마 받아들여 자하비의 아이디어를 소개할 것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이타적 기부 행위는 인디언의 ‘포틀래치Potlatch’ 식 자기 우위를 나타내는 과시 신호다. 즉 "내가 너보다 얼마나 우월한지 좀 보렴. 나는 네게 기부할 능력이 있어!"와 같이 말이다. - <이기적 유전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26256 - P16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불멸의 유전자’를 책 제목으로 해야 했을지 모르겠다. ‘이타적인 운반자’라는 제목도 괜찮았을지 모른다. 너무 수수께끼 같은 제목이겠지만, 어쨌든 자연선택의 단위로서 유전자 대 개체 사이의 명백한 논쟁(고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를 끝까지 괴롭혔던 논쟁)은 해결된 셈이다. 자연선택의 단위에는 두 종류가 있고, 이에 대한 논쟁은 없다. 유전자는 ‘자기 복제자’라는 의미로서의 단위이고, 개체는 ‘운반자’라는 의미로서의 단위다. 둘 모두 중요하다. 어느 쪽도 경시되어서는 안 된다. 둘은 완전히 별개의 단위이며, 이 둘을 구별하지 못하면 우리는 어쩔 도리 없이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 <이기적 유전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26256 - P17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에 대한 또 하나의 훌륭한 대안은 ‘협력적 유전자The Cooperative Gene’일 것이다. 이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정반대 의미로 들리지만, 이 책은 이기적인 유전자들 사이의 협력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한다. 이는 어떤 유전자 그룹이 같은 그룹의 구성원들이나 다른 그룹의 희생을 발판으로 번영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각각의 유전자는 유전자 풀pool(한 종 내에서 유성생식으로 서로 섞이게 될 유전자 세트들) 내에 있는 다른 유전자들을 배경으로 하여 그 자신의 이기적인 계획을 이행하는 것이다. 다른 유전자들은 각 유전자가 살아가는 환경의 일부다. 기후라든지 포식자와 피식자, 식생과 토양 세균이 환경의 일부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각 유전자의 관점에서 볼 때 ‘배경’ 유전자들은 자신이 수많은 세대를 거쳐 이어 온 시간 여행에서 몸체를 공유하는 길동무다. 단기적으로는 그 유전자와 같은 게놈을 구성하는 유전자들을 의미하며, 장기적으로는 그 종의 유전자 풀 내에 있는 다른 유전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연선택은 서로 같이 존재할 때 상리相利적으로 양립할 수 있는, 다시 말하자면 협력하는 유전자의 무리를 반드시 선호한다. 이 ‘협력적 유전자’의 진화는 결코 이기적 유전자의 근본적인 원리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 <이기적 유전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26256 - P18
이처럼 자연선택을 보는 데도 두 가지 관점, 즉 유전자의 관점과 개체의 관점이 있다. 제대로 이해한다면 두 관점이 같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같은 하나의 진실에 대해 두 개의 관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당신이 한 관점에서 다른 관점으로 바꾼다 해도 그것은 여전히 동일한 신다윈주의다. - <이기적 유전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26256 - P31
어떤 종이 다른 종보다 우월하다는 객관적인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침팬지와 인간, 도마뱀과 곰팡이, 우리 모두는 대략 30억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자연선택이라는 과정을 거쳐 진화해 왔다. 각각의 종 안에서도 어떤 개체는 다른 개체보다 생존하는 자손을 더 많이 남겨 그들이 갖고 있는 번식에 성공적인 유전 형질(유전자)이 다음 세대에 더욱 많아지게 된다. 이것이 자연선택이다. 자연선택은 무작위적이 아닌 차등적인 유전자의 번식을 말한다. 자연선택의 결과 지금의 우리가 있게 되었으며,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도 자연선택이다. - <이기적 유전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26256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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