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내 생의 날들에 가을이 오고 흰 여백의인생 노트도 점점 얇아지고 있다. 만년필에 담아쓰는 잉크는 갈수록 피처럼 진해지기만 해서, 아껴써야만 하는 남은 생의 백지를 묵연히 바라본다. - P9

진정한 독서란 지식을 축적하는 ‘자기 강화‘의 독서가 아닌 진리의 불길에 나를 살라내는 ‘자기소멸‘의 독서다. 책을 ‘읽었다‘와 책을 ‘읽어버렸다.’ 의 엄청난 차이를 알 것이다. 읽어버리는 순간, 어떤 숨결이 일었고, 어떤 불꽃이 피었고, 저 영원의 빛에 감광되어 버렸고 그로부터 내 안의 무언가 결정적으로 살라지고 비워지고 만 것이다. 그 소멸의 자리만큼이 진정한 나를 마주하고 새로운 삶을 잉태하는 하나의 성소인 것이다. - P12

나는 보았다. 아니, 보아버리고 말았다. 나는 만났다. 아니, 만나버리고 말았다. 나는 읽었다. 아니, 읽어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나는 이제까지의 나를 버리고 그 진리 앞에 응답해야 한다. 책으로의 도피나 마취가 아닌 온 삶으로 읽고, 읽어버린 것을 살아내야만 한다. 독서의 완성은 삶이기에.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저마다 한 권의 책을 써나가는 사람이다. 삶이라는 단 한 권의 책을. - P12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둠이 깊어서가 아니다.
너무 현란한 빛에
눈이 멀어서이다.
If we cannot see what lies ahead,
it is not because the darkness
has grown deeper.
Our eyes have been blinded
by too bright a light.
<걷는 독서> 박노해 - P29

너와 나, 이 만남을 위해
우리는 오랜 시간 서로를 향해 마주 걸어오고 있었다.
For this encounter, you and I
have been walking toward each other
for a very long time.
<걷는 독서> 박노해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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