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 김현경은 그의 아름다운 책 『사람, 장소, 환대』에서 인간과 사람이라는 개념을 구분하면서 사람이란 구성원들의 환대를 통해 비로소 공동체 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어떤 개체가 인간이라면 그 개체는 우리와의 관계 바깥에서도 인간일 것이지만,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38

헌법이 보장하는 최고의 가치이자 모든 기본권의 이념적 기초는 인간의 존엄성이다.

-알라딘 eBook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40

인간 존엄성의 근거를 철학적으로 정리한 칸트는 오히려 인간이 존엄하기 때문에 사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인간은 자율적 이성을 가졌기에 존엄한데, 그런 인간이 스스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선택을 했다면 그의 행위에 걸맞은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그를 인간으로 존중하는 방법이라는 논리다.

-알라딘 eBook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41

대표적인 계몽사상가 존 로크 역시 사형제도를 긍정했다. 그는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명, 건강, 자유 또는 소유물에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는 자연법이 존재한다고 전제하고, 이러한 자연법을 위반한 범죄자는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부당한 폭력과 살인으로 전 인류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셈이기 때문에, 호랑이나 사자처럼 살해되어야 마땅하다고 보았다.

-알라딘 eBook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42

반면, 사형폐지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계몽사상가는 형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다. 그는 1764년 출간한 저서 『범죄와 형벌』에서 사형은 유용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범죄에 대한 억제력 측면에서 볼 때 사형의 효과는 일시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망각이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유를 박탈당한 채 평생 짐 나르는 짐승처럼 취급받고, 자신의 노동으로 사회에 끼친 손해를 속죄하는 범죄자의 모습을 오래 보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인 억제책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사형폐지론의 오랜 근거 중 하나다. 사형제도에 흉악범죄를 억제하는 일반예방효과(형벌을 통한 범죄 예방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42

응보 감정이 존중되어야 한다면, 국가에 의한 살인인 사형에 대해 느껴지는 불편함과 두려움의 감정 역시 존중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어느 감정이 우세해질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국가가 합법적으로 국민을 죽이는 사회에 살고 싶은가, 그렇지 않은가.

-알라딘 eBook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49

그렇기에 인간 존엄성의 보장은 자유에서 출발한다. 자율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존재, 객체가 아닌 주체인 존재. 인간을 그런 존재로 인정하면서 비로소 근대가 시작되었다.

-알라딘 eBook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50

그래서 평등이 필요하다. 자유와 평등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탱하는 기둥이고,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역시 자유권적 기본권, 평등권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알라딘 eBook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51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헌법은 많은 권리의 리스트를 적어놓고 있다. 교육받을 권리(제31조), 근로의 권리(제32조),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제33조),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환경권, 제35조), 그리고 가장 포괄적인 권리로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제34조).
이런 권리들을 통틀어 ‘사회적 기본권’이라고 부른다.

-알라딘 eBook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52

사회적 기본권은 그 자체만으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권리를 발생시키지 못하고, 국회가 그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개별 법률을 제정하고 예산을 배정해야 비로소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마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과도 같다.

-알라딘 eBook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53

결국 사회적 기본권은 이를 구현하는 구체적인 입법에 의해 생명력을 얻는다. 헌법 교과서에는 사회적 기본권에 대한 설명이 자유권, 평등권 못지않은 분량으로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에는 재미없어서 쓰지 못하는 이유는 그 설명이라는 것이 죄다 ‘국가는 ~하여야 한다’는 당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곧, 아직 사회적 기본권을 채우는 구체적인 법률들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알라딘 eBook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55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최우선의 가치다. 그게 ‘존엄’의 의미다. 인간이 존엄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조건들이 당연한 천부인권으로 받아들여지고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사회가 이룩될 때, 비로소 헌법은 세상에서 완성된다.

-알라딘 eBook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56

진짜로 그렇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약속」에서 밝혔듯이, 나는 인간의 존엄성이란 결국 인간들끼리 서로를 존엄하게 취급하기로 약속하기 시작한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약속의 바탕에는 동료 인간들의 비참한 처지에 본능적으로 울컥하는 감정이 존재한다. 이 감정을 가장 잘 설명한 사람이 맹자라고 생각한다.

-알라딘 eBook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57

『맹자』 「공손추편」에 이르기를 "불쌍해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불쌍해하는 마음은 어짊의 근본"이라고 했다. 불쌍해하는 마음, 측은지심이 인간의 본래 타고난 본성인 사단四端 중의 으뜸이라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57

인권, 기본권의 기초가 되는 영국의 권리장전(1689년), 미국의 버지니아 권리장전(1776년), 프랑스 인권선언(1789년)은 지금 읽어봐도 놀라울 만큼 인권 보장에 충실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알라딘 eBook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59

사람이 죽든 말든 정해놓은 매뉴얼과 절차가 더 중요한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는 제도는 있을지 모르되 인간을 존엄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다. 사람에게 차마 해를 가하지 못하고 사람의 불행을 앉아서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 이 마음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맹자의 오래된 가르침이 어쩌면 인공지능과 알고리즘, 복잡한 시스템으로 가득한 21세기에 더욱 필요한 헌법적 감수성일지도 모르겠다.

-알라딘 eBook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6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