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작고 따뜻한 가게에서 느지막이 커피를 마시며 추위 속에서 서둘러 걸어가는 행인들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마차를 잡아서 미술관으로 갔다.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천장이 높은 전시관들을 돌아다녔다. 그림에 반사된 빛이 풍요롭고 은은했다. 그 조용함, 그 따스함, 오래된 그림들과 조각상들 덕분에 시간을 초월한 듯한 그 분위기 속에서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과 나란히 걷고 있는 섬세한 키다리 아가씨를 향해 사랑이 마구 샘솟는 것을 느꼈다. 그의 마음속에서 솟아오른 조용한 열정은 따스했으며, 관능적이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았다. 사방에 걸린 그림에서 솟아나온 색깔들과 같았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102

한 달도 안 돼서 그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그는 침묵을 배웠으며, 자신의 사랑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가 애정을 담아 그녀에게 말을 걸거나 몸을 만지면, 그녀는 그를 외면하고 내면으로 숨어 들어가 아무 말 없이 견디기만 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동안 전보다 한층 더 힘들게 새로운 한계까지 자신을 혹사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 같은 침대를 쓰는 것만은 고집스럽게 그만두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그녀가 자다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직여 그에게 닿을 때가 있었다. 또한 결혼생활에 대한 스토너의 깨달음과 결의가 사랑 앞에서 무너져 내려 그가 그녀를 향해 움직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때 그녀가 깊은 잠에 빠져 있지 않으면, 긴장해서 몸을 뻣뻣하게 굳힌 채 고개를 옆으로 돌려 베개에 묻고서 자신을 범하는 그의 몸짓을 견뎌냈다. 그럴 때 스토너는 최대한 빨리 사랑의 행위를 하면서 이렇게 서두르는 자신을 증오하고, 그녀에 대한 열정을 후회했다. 그녀가 잠기운 때문에 반쯤 무감각해져 있을 때도 가끔 있었다. 그럴 때면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졸린 목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그녀가 항의를 하는 건지 놀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이런 드문 순간들을 고대하게 되었다. 그녀가 잠에 취해 그의 행동을 묵인할 때에는 마치 그녀가 자신에게 모종의 반응을 하는 것처럼 자신을 속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111

그들은 각자 맥주를 한 잔씩 마시며 핀치의 술 빚는 솜씨를 칭찬했다. 술맛은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쌉쌀하고 가벼우며 색깔도 좋았다. 심지어 이디스도 한 잔을 다 마시고 또 한 잔을 받았다.
다들 조금 술에 취해서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감상에 잠겨 웃어댔다. 서로가 색다르게 보였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115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바스락거리는 인동덩굴의 섬세한 이파리들에 섞여 따스한 공기 속에서 흔들리는 층층나무의 달콤한 냄새가 사방에 짙게 깔려 있었다. 흐릿한 글자들을 집중해서 읽느라 눈이 따가웠고, 머릿속에는 방금 읽은 내용이 묵직하게 들어 있었다. 손가락은 낡은 가죽표지와 양장본과 종이의 느낌을 여전히 간직한 채 얼얼하게 감각이 마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걷고 있는 주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그 안에서 기쁨을 찾아냈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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