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1918년 여름에 그는 죽음을 자주 생각했다. 매스터스의 죽음은 인정하기 싫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유럽에서 발생한 최초의 미군 사상자 명단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전에는 죽음을 문학적 사건 또는 불완전한 육체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조용하게 마모되어 가는 과정으로만 생각했다. 전장에서 터져 나오는 폭력이나 파열된 목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처럼 다른 종류의 죽음이 존재하는 까닭, 그리고 그 차이가 지니는 의미가 궁금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친구 데이비드 매스터스의 살아 있는 가슴속에서 언뜻 보았던 씁쓸함이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점점 커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59
이렇게 해서 스토너는 처음 시작한 곳에서 다시 출발하게 되었다. 키가 크고, 깡마르고, 구부정한 소년의 모습으로 자신을 지금의 이 길로 이끌어준 강의에 귀를 기울이던 바로 그 강의실에서 키가 크고, 깡마르고, 구부정한 남자의 모습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그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예전에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흘깃 바라보며, 매번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아 있지 않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곤 했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63
그녀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문을 열더니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문간으로 훅 들어와서 스토너의 뜨거운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녀가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며 몇 번 눈을 깜박였다. 색이 연한 눈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거의 대담해 보일 정도였다. 마침내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오셔도 돼요." 미소는 짓지 않았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71
이디스는 그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키가 크고, 더 약해 보였다. 얼굴은 갸름했고, 입술은 계속 꼭 다물린 채 다소 강해 보이는 이를 감추고 있었다. 투명해 보이는 피부는 아주 작은 일에도 잘 달아오를 것 같았다. 붉은 기운이 있는 밝은 갈색 머리카락을 굵게 땋아서 머리 위에 여러 층으로 틀어 올렸다. 하지만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그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그녀의 눈이었다. 몹시 커다란 그 눈은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연한 파란색이었다. 그 눈을 보면 그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의 세계로 끌려가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본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는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74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자신과 그녀가 타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 그런 느낌을 갖게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는 또한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확신했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78
그 내면의 사적인 공간으로 지금 윌리엄 스토너가 침범해 들어왔다. 그런데 그녀의 내면에 있는 줄도 몰랐던 어떤 것, 아마도 본능 같은 것이 밖으로 나가려는 그를 불러 세운 뒤, 필사적으로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녀는 전에도 그렇게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고, 그 뒤로도 다시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81
그날 밤 손님방에서 윌리엄 스토너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는 어둠 속을 빤히 바라보며 자신의 삶이 왠지 낯설고 이상해졌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부터 자신이 하려는 일이 현명한 행동인지 처음으로 의문이 들었다. 이디스를 생각하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갑작스러운 불안감과 회의를 느끼는 것은 모든 남자가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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