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들은 시지프에게 끊임없이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굴려올리는 형벌을 과하였다. 그러나 이 바위는 그 자체의 무게로 말미암아 다시 산꼭대기에서 굴러떨어지는 것이었다. 무익하고도 희망 없는 일보다도 더 무서운 형벌은 없다고 신들이 생각한 것은 일리 있는 것이었다. - <시지프의 신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15481711 - P189
이 신화가 비극적이라면, 그것은 이 영웅이 의식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성공의 희망이 그를 지지한다면 그의 고통은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오늘날의 노동자들은 그 삶의 매일매일을 같은 일에 종사하는데, 그 운명도 역시 부조리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의식적이 되는 그 드문 순간에 있어서만 비극적이다. 신들의 프롤레타리아인 무력하고도 반항적인 시지프는 그의 비참한 조건의 전모를 알고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동안 그가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비참한 조건에 대해서이다. 아마도 그의 괴로움을 이루었을 그 통찰이 동시에 그의 승리를 완성한다. 멸시로써 극복되지 않는 운명은 없는 것이다. - <시지프의 신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15481711 - P192
"이렇게 많은 시련에도 나의 고령과 내 영혼의 위대성은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이 좋다고 판단하게 한다." 이렇듯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는 도스토옙스키의 키릴로프처럼 부조리한 승리 형태를 제시한다. 고대의 예시가 현대의 영웅주의와 결합한다. - <시지프의 신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15481711 - P193
그러나 세계는 단 하나뿐이다. 행복과 부조리는 같은 땅의 두 아들이다. 이들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 잘못은 행복이 필연적으로 부조리한 발견에서만 생긴다고 말하는 데 있을 것이다. 부조리한 감정도 마찬가지로 행복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 <시지프의 신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15481711 - P194
시지프의 말 없는 모든 기쁨이 거기에 있다. 그의 운명은 곧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인간은 자기의 고통을 바라볼 때, 모든 우상을 침묵하게 한다. - <시지프의 신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15481711 - P194
부조리한 인간은 긍정적으로 대답하며, 그의 노력은 끝이 없을 것이다. 개인적인 운명은 있지만, 그 운명이 숙명적이고 경멸해야 할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 있을 뿐, 더 우월하거나 더 열등한 운명은 없는 것이다. 그 외의 것에 대한 인간은 그의 일상생활의 주인이라는 것을 안다. 인간이 그 삶으로 되돌아가는 이 미묘한 순간, 그의 바위로 되돌아오는 시지프는 자신에 의해 창조되고, 기억의 눈길 아래 통일되고, 곧 죽음에 의해 봉인(scellé)될 그의 운명이 되는 연결 없는 이 행위의 연속을 바라본다. 그리하여 인간적인 모든 것이 모든 인간의 근원을 확신하는, 보고 싶지만 밤은 끝이 없다는 것을 아는 이 장님, 그는 늘 움직이고 있다. 바위는 또 다시 굴러떨어진다. - <시지프의 신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15481711 - P195
산꼭대기로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보아야 한다. - <시지프의 신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15481711 - P195
이미 우리는 시지프가 부조리한 영웅이란 것을 이해했다. 그는 그의 정열로써만이 아니라 고민으로 말미암아 부조리한 영웅인 것이다. 신들에 대한 그의 멸시, 죽음에 대한 증오, 사려에 대한 정열은 온갖 존재가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는 것에 노력해야 하는 형용할 수 없는 형벌을 초래했다. - <시지프의 신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15481711 - P191
내가 작품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명확한 플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먼저 부정(否定)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세 가지 형식으로, 즉 소설 분야에서는 《이방인》, 극(劇)으로서는 《카리귤라》와 《오해》, 사상에서는 《시지프의 신화》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말하자면 그것은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역시 나는 세 가지 형식으로 긍정(肯定)을 예상했었습니다······ 소설로서는 《페스트》, 극으로서는 《계엄령》과 《정의의 사람들》, 사상으로는 《반항적 인간》이었습니다. - <시지프의 신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15481711 - P219
그리하여 마침내 카뮈는 부조리에서 세 개의 결과를 이끌어낸다. 반항(révolte), 자유(liberté), 열정(passion)이 그것이다. - <시지프의 신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15481711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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