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염두에 두는 인간 조건이 무엇이든 고전이 시공을 초월해서 의미가 있다면, 바로 이 불변의 인간 조건이만드는 근본 문제에 대해 발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록 과거의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고전에 담긴 생각은 무의미한 시체가 아니다. 인간의 조건이 변치 않는 한, 근본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고전의 가치 역시 변치 않는다. 그런데 과연 인간에게 그토록 변치 않는 근본 문제가 있는가? - P12
근본적이든 아니든 인간에게 문제는 늘 있다. 그것이야말로 근본 문제이다. 그렇다면 변치 않는 근본 문제의유무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에 대한 답이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 P13
고전은 변치 않는근본 문제에 대해 결정적인 답을 제공하기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 문제에 관련하여 상대적으로 나은 통찰과 자극을 주기에 유의미하다. 그래서 하나의 고전을 성전으로 만드는 대신 지적 네크로필리아들은 과거에 존재했던 다양한 양질의 자극을 찾아서 오늘도 역사의 바다로뛰어든다. - P14
그렇다면 생각이 죽어 묻히는 자리는 어디인가? 생각의 무덤을 우리는 텍스트text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텍스가 죽어 묻히는 자리는 어디인가? 텍스트의 무덤을 우리는 콘텍스트context라고 부른다. 콘텍스트란 어떤 텍스트를 그 일부로 포함하되, 그 일부를 넘어서 있는 상대적으로 넓고 깊은 의미의 공간이다. 죽은 생각이 텍스트에서 부활하는 모습을 보려면 콘텍스트를 찾아야 한다. 즉과거에 이미 죽은 생각은 『논어』라는 텍스트에 묻혀 있고, 그 텍스트의 위상을 알려면 『논어』의 언명이 존재했던 과거의 역사적 조건과 담론의 장이라는 보다 넓은 콘텍스트로 나아가야 한다. - P15
고전의 지혜가 우리가 현대에 당면한 어떤 문제도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논어』를 왜 읽는가? 고전을 왜 읽는가? 실로 고전 텍스트를 읽는다고 해서 노화를막거나, 우울증을 해결하거나, 요로결석을 치유하거나, 서구 문명의 병폐를 극복하거나, 21세기 한국 정치의 대답을찾거나, 환경 문제를 해결하거나, 현대인의 소외를 극복하거나, 자본주의의 병폐를 치유할 길은 없다.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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