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포도주 지역과 맥주 지역으로 구분하는 관행은 이렇듯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오늘날까지도 상당 부분 남아 있다. 옛 로마 제국의 중심부에서는 지금도 포도주를 주로 마시지만, 카이사르와 타키투스가 ‘맥주 마시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던 영국인, 벨기에 인, 독일인, 바이킹 족은 여전히 맥주를 즐겨 마신다. - <그때, 맥주가 있었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30832 - P15
비중: 맥아를 으깬 맥아즙에서 용해 설탕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맥아즙 속 설탕은 효모를 첨가하면 알코올로 바뀐다. 따라서 비중이 높으면 알코올 함량이 높아진다. 비중은 °P플라토라는 단위로 나타내는데 10°P는 맥아즙의 10%가 설탕이라는 뜻이다. - <그때, 맥주가 있었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30832 - P17
성서는 보리를 많이 재배하지 않는 지역에서 편찬되었다. 이 사실은 성서의 내용에도 반영되었다. 예수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맥주로 바꾸지 않았다. 최후의 만찬에도 맥주잔은 등장하지 않는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본받아 포도주를 마셨다. - <그때, 맥주가 있었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30832 - P20
양조장은 무려 세 곳이나 되었는데, 많은 수도원이 성 갈렌 수도원을 따라 세 군데씩 양조장을 만들었다. 제일 큰 양조장에서는 수도원에서 자체적으로 소비할 맥주를 만들었고, 두 번째 양조장에서는 귀한 손님에게 드릴 맥주를, 세 번째 양조장에서는 순례자나 거지들에게 나누어 줄 맥주를 빚었다. 세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가 어떻게 다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설계도에 여과실이 따로 있는 곳은 첫 번째 양조장뿐이다. 제일 좋은 맥주를 수도사들의 몫으로 할당했던 것 같다. 816년 8월에 열린 아헨 공의회에서도 수도사 한 명당 매일 ‘품질 좋은’ 맥주 1섹스타리우스(로마의 도량형으로, 액체의 부피를 나타내는 단위. 1섹스타리우스는 약 0.55리터다.)를 지급하라고 확정했다. - <그때, 맥주가 있었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30832 - P29
최고 정통으로 꼽히는 제품은 트라피스트회 소속 수도원 여섯 곳의 수도사들이 직접 수도원 안에서 양조하는 맥주들이다. 수도원 양조장과 상업적 양조장이 협력해 생산하는 수도원 맥주의 수는 그보다 많다. 벨기에에서는 약 스무 곳의 양조장이 수도원과 협력해 맥주를 생산하는데, 이들 제품 역시 수도원 맥주라고 부른다. - <그때, 맥주가 있었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30832 - P31
‘맥주의 왕’ 감브리누스Gambrinus는 가톨릭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성인은 아니지만, 유럽 전역에서 맥주 문화의 수호성인으로 불린다. 즉,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양조장의 수호성인이기도하다. 여러 전설에 따르면 그는 이집트 여신 이시스에게서 맥주 양조법을 배웠고, 홉 이용법을 개발했으며, 맥주의 힘을 빌려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전설들의 신빙성은 그리 높지 않다. 따라서 감브리누스라는 이름은 켈트식 라틴어 ‘캄바리우스cambarius: 양조인’나 라틴어 ‘가네아에 비리누스ganeae birrinus: 술집에서 술 마시는 사람’에서 왔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요한 1세를 칭하는 네덜란드식 라틴어 ‘얀 프리뮈스Jan Primusn’에서 왔을 가능성이 조금 더 높다. 그리고 그 이름의 주인공은 브라반트의 공작 요한 1세1252~1294가 아니면 부르군트의 공작 ‘용맹공’ 장 1세1371~1419일 것이다. - <그때, 맥주가 있었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30832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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