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직 출근할 준비도 안 했는데, 당신은 이른 봄 한 마리 작은 새가 비상하듯 집에서 나오셔서 환한 모습으로 뜰을 가로질러 가시더군요. 그런 당신을 보는 저는 또 얼마나 신이 났었다고요!

가난한 사람들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석영중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07 - P14

4월 8일

더없이 소중한 나의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

어제 저는 행복했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석영중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07 - P8

오늘 아침엔 저도 기분좋게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정말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표도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일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 제게도 일감을 가져다 주었거든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비단을 사러 나갔던 거예요. 돌아와선 곧 일을 시작했어요. 아침 내내 제 마음이 얼마나 홀가분하고 신이 났었다고요! 하지만 지금은 다시 어두운 상념들뿐이고 제 가슴은 온통 슬픔에 잠겨 있어요.

아아, 앞으로 저는 어떻게 될까요, 제 운명은 대체 어떻게 전개될까요? 불확실한 내일과 보장 없는 미래, 그리고 앞으로 제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도 할 수 없는 현실만 생각하면 전 괴롭기만 합니다. 과거는 돌이켜 보는 것조차 무서워요. 잠깐만 회상을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으니까요. 저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사악한 사람들 때문에 저는 앞으로도 수많은 세월을 울고 울고 또 울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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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07 - P27

바렌까, 저는 늙고 많이 배우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젊었을 때도 못 배웠고, 이제 다시 뭘 배운다 해도 머릿속에 들어올 것 같지도 않습니다. 나의 소중한 사람, 솔직히 말해서 저는 글을 잘 못 씁니다. 뭔가 재미있는 것을 써보려 하면 결국엔 실없는 소리나 잔뜩 늘어놓게 되고 말죠.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석영중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07 - P38

4월 12일

친애하는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

아아, 나의 소중한 사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당신은 항상 저를 놀라게 하는군요. 편지를 쓸 때마다 그렇게도 몸조심하라고, 옷 좀 든든하게 입으라고, 날씨가 안 좋을 땐 밖에 나가지 말라고, 만사 조심 또 조심하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나의 천사님, 당신은 정말 제 말을 너무 안 듣는군요. 아아, 내 가엾은 사람. 당신은 정말 어린애 같습니다. 당신은 몸이 너무 약해요. 지푸라기처럼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바람이라도 좀 불면 금세 앓아 눕잖아요. 그러니까 늘 스스로 관리하고 조심하고 위험한 일은 피해야 합니다. 당신의 친구들을 슬프고 우울하게 만들면 안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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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07 - P42

아주 가난한 가족이 저희 하숙집에서 방을 하나 빌려 살고 있는데 그 방은 다른 방들과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다른 쪽, 하숙집 한구석에 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참으로 조용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 사는 데선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까요. 온 식구가 방 하나에서 칸막이를 치고 살고 있습니다. 그 집 남자는 관청 관리인데, 한 7년 전쯤 무슨 이유에선가 직장에서 쫓겨났답니다. 고르쉬꼬프라는 성을 가진 그 사람은 머리가 허옇게 셌고 키도 작습니다. 언제나 기름때가 번지르르한 다 해진 옷만 입고 다녀서 쳐다보기도 민망스러울 정돕니다. 저보다 훨씬 못한 사람도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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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07 - P48

당신께 포도를 조금 보냅니다. 회복기에 있는 사람에겐 이게 좋다고들 하더군요. 의사도 갈증 해소에는 포도 이상 좋은 게 없대요. 얼마 전엔 장미꽃이 갖고 싶다고 하셨죠. 그것도 함께 보냅니다. 내 소중한 사람, 식욕은 좀 어때요? 정말로 중요한 것은 바로 그거라고요. 그건 그렇고 다행히 이제 나쁜 일은 다 지나갔습니다. 끝났다고요. 우리의 불행의 막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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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07 - P55

어머니와 나는 집도 절도 없는 알거지 신세가 되었다. 어머니의 병은 사람을 쉽게 피로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벌어먹을 능력도 없었고, 살아 나갈 아무런 기반도 없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뿐이었다. 내 나이 열네 살 되던 해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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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07 - P72

처음 나는 잠이 들지 않기 위해서 책을 읽었고, 시간이 좀 지나자 진지하게, 그리고 나중엔 책 속으로 몰입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낯설고 새로운 것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내 눈앞에 펼쳐졌던 것이다.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느낌들이 거센 물결처럼 한꺼번에 가슴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런 흥분이 거세어질수록, 새로운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이 당황스럽고 벅찰수록, 나는 점점 더 깊이 그 낯선 느낌에 빠져 들었고, 그 느낌은 점점 더 달콤하게 내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다. 새로운 느낌들은 한꺼번에 내 가슴속에 들어와 북적거렸고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기이한 혼돈 상태가 나의 존재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런 정신적인 충격도 나라는 사람을 완전히 뒤바꿀 만큼 혼란을 야기하지는 못했다. 나는 공상 속에 사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나를 지켜 주었던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석영중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07 - P112

마침내 나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어 달라고 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신이 주는 빛, 태양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커튼을 젖혔다. 하지만 그때 막 시작하는 하루는 죽어 가는 환자의 가엾은 삶처럼 슬프고 음울했다. 해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구름과 안개 장막으로 갇혀 있었다.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잔뜩 찌푸린 음산한 날이었다. 가랑비가 창문에 부딪혀서 차갑고 더러운 물줄기가 되어 흘러내렸다. 밖은 흐릿하고 어두웠다. 방 안으로 희미한 빛이 겨우겨우 비집고 들어왔지만, 그것은 성상 앞에 켜놓은 흔들거리는 램프 불빛보다 그리 나을 것이 없었다. 죽어 가는 환자는 나를 슬프디슬픈 눈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는 숨을 거두었다.

가난한 사람들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석영중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07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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