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 아래에서 활짝 핀 히아신스들이 수백 개의 조그만 자줏빛 손을 줄기 위로 뻗어 햇살을 품는다. -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5991 - P18

그의 앞에 서 있는 아가씨는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붙박인 듯 히아신스 향기를 풍긴다. 그녀의 머리칼은 나이를 먹었지만 그 사이사이로 부는 바람은 새롭고, 그는 사랑에 빠지는 느낌이 어떤 건지 아직도 기억한다. 그 느낌은 가장 마지막까지 그의 곁에 남을 기억이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건 그의 몸속이 모두 채워지는 걸 뜻했다. 그가 춤을 춘 것도 그 때문이었다. -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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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니 벤치 아래 흙이 진창으로 바뀌었는데 열쇠와 유리 조각들은 아직 그대로 있다. 광장 너머는 호수고, 넘실거리는 얕은 파도에 밀려서 배에 얽힌 기억은 이미 지나갔다. 노아는 머나먼 섬에 쳐놓았던 초록색 텐트가 눈앞에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새벽에 일어났을 때 서늘한 이불처럼 나무를 다정하게 감싸고 있던 안개를 떠올린다. -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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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눈을 감고 흐르려는 눈물을 눈꺼풀 안에 가둔다. 광장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데 갓난아이가 울 때처럼 처음에는 보일락 말락 하다가 이내 멈추지 않을 기세로 퍼붓는다. 묵직하고 하얀 눈송이가 할아버지의 생각을 모두 덮는다. -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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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물고기를 낚는 법과 큰 생각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과 밤하늘을 쳐다보며 그것이 숫자로 이루어졌음을 파악하는 법을 가르쳐준 노인의 손을 잡는다. 거의 모두가 두려워하는 영원이라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으니 그런 점에서 수학이 노아에게는 축복이었다. 노아가 우주를 사랑하는 이유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죽지 않기 때문이다. 평생 자신을 떠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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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기억들이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어. 물과 기름을 분리하려고 할 때처럼 말이야. 나는 계속 한 페이지가 없어진 책을 읽고 있는데 그게 항상 제일 중요한 부분이야." -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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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만히 서서 몇 분 동안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두 사람은 끝까지 아옹다옹하며 지냈고 끝까지 각방을 쓰지 않았다. 그는 평생 확률을 계산하는 일을 했지만 그녀처럼 확률적으로 희귀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그녀와 같이 있으면 그는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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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숨을 한 번 마신 다음 대답한다.

"나는 새벽이 그리워요. 더 이상 태양을 막을 방법이 없을 때까지 점점 더 짜증을 내며 조급하게 수면 위로 발을 구르던 새벽이. 호수 위로 반짝이던 햇살이 부둣가 돌멩이들을 지나 뭍으로 올라와서 정원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집 안으로 살그머니 쏟아져 들어오면 이불을 박차고 나와서 하루를 시작했잖아요. 사랑스럽게 졸음에 겨워하던 그때 당신 모습이 그리워요. 그때 당신 모습이." -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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