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의 독일의 시인인 질레지우스(Angelus Silesius, 1624~1677)가 시로 표현했다.

나는 존재하나 내가 누군지 모른다.
나는 왔지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나는 가지만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내가 이렇게 유쾌하게 산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 <코스모스, 사피엔스, 문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72726 - P618

이탈리아의 시인 자코모 레오파르디(Giacomo Leopardi, 1798~1837)가 20대에 쓴 시이다.

무한
이 황량한 언덕이 언제나 내게 익숙했고,
이 울타리는 사방으로부터 마지막 지평선의 시선을 가린다.
그러나 울타리 저 너머의 무한한 공간과
초월적인 침묵과 신비한 정적을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노라면
나는 상념에 젖어들고,
불현듯 마음이 두려워진다.
그리고 이 나무들 사이로
속삭이는 바람결을 들으며,
나는 저 무한의 침묵과 이 소리를 비교해 본다.
영원과 죽은 계절들,
살아 있는 오늘의 계절과 그 소리가 되살아난다.
이렇게 이 광활함 안에
나의 상념은 빠지고
이 바다 속으로의 난파는 달콤하구나.

- <코스모스, 사피엔스, 문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72726 - P619

그리스도교 신학책 중 거의 유일하게 내가 읽을 수 있었던 신학자인 한스 큉의 글이다.

누가 나를 이 세상에 생겨나게 했는지
세계는 그리고 나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나는 만사에 대하여 끔찍한 무지 속에 있다.
나는 나의 육체, 나의 감각, 나의 정신이 무엇인지 모르거니와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하고, 모든 것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성찰하는, 그러나 기타의 것은 물론 자기 스스로도 모르는 내가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나를 에워싼 이 우주의 끔찍한 공간을 본다.
그리하여, 광막한 우주의 한 모퉁이에 매달린 자신을 발견할 뿐
무슨 이유로 다른 곳 아닌 이곳에 위치하고 있는지
무슨 이유로 나에게 허용된 이 짧은 시간이 과거에서 나에게 이를 전 영원과 미래로 이어질 전 영원 사이의 다른 시점이 아닌 이 시점에 지정된 것인지를 모른다.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오직 무한일 뿐이며
이 무한은 다시는 돌아올 길 없이 한순간 지속될 뿐인 하나의 원자, 하나의 그림자와도 같은 나를 덮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다만 내가 곧 죽으리라는 것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모르는 것은 이 피할 수 없는 죽음 그 자체이다.
나는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것처럼 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을 떠나면 영원히 허무 속에,
아니면 성난 신의 손에 떨어지리라는 것뿐이다.
이 상태 중 어느 편에 영원히 갇히게 될지 모른 가운데
이것이 곧 결함과 불확실성이 넘쳐 있는 나의 상태이다.

- <코스모스, 사피엔스, 문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72726 - P721

파스칼은 무한한 우주 공간의 끝없는 침묵에 두려움과 경외감을 느꼈다. 무한한 우주공간의 영원 같은 침묵을 두려워하였으니 그도 ‘구토’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무한히 작은 미시세계(微視世界)의 심연 앞에서 두려움이 엄습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이 지상에 태어난 이래 오랜 세월동안 처한 불균형이요, 파스칼이 말하는 "인간의 위대함이자 비참함이다(la grandeur et misere del’homme)."792) "결국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무한과 영원에 비하면 무, 무에 비하면 전부, 무와 전부 사이의 중간이다."793) 위대한 ‘전부’와 비극적인 ‘무’에 갇혀버린 중간자이다.

- <코스모스, 사피엔스, 문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72726 - P6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