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장은 내 첫 책(마지막 책이기도 한)을 낸 만화 출판사 영업부장이었다.

잡지만화 시절 실시된 마지막 공모전. 거기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나는 만화가가 됐다. 담당 편집자는 첫 대면에 내 만화가 절대 잘 팔릴 만한 내용이 아니라고 선언하듯 말했다. 그는 예방주사라 했지만, 내겐 군대 고참이 부리는 텃세로 느껴졌다. 오히려 내 만화에 관심을 갖고 잘 팔아보겠다고 한 건 영업을 담당한 김 부장이었다. 말년 병장이 갓 들어온 이등병에게 격의 없이 대하듯 그는 정말 친절했다. 담당 편집자 예상대로 잘 안 팔려 찬밥이 된 내 만화책을 좋아해주고, 어떻게든 팔아보려 노력한 그야말로 나의 유일한 우군이었다. - <망원동 브라더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5344491 - P19

제법 시원하네, 만족하던 찰나 양심이 간질거려 일어선다. 문을 열고 선풍기를 정확히 문과 마루 사이에 놓고 회전 모드로 작동을 시키자, 바람이 김 부장의 러닝셔츠를 흔든다. 선풍기는 일정하게 고개를 돌리며 방으로도 바람을 밀어넣는다. - <망원동 브라더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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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들어와 눕는다. 아까만큼 시원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밤을 날 수 있을 듯하다. 그때 귓가에 들리는 소름끼치는 윙윙 소리. 아이 씨……발! 선풍기 바람을 타고 모기들이 침공한다. 방의 창에는 방충망이 있지만 마루와 부엌 창엔 방충망이 없다. 그렇다고 문을 닫을 수도 없는 노릇. 왜 나는 에프 킬라가 떨어져도 새로 살 생각을 안 하는가? 식료품 살 돈도 빠듯해 생필품은 늘 뒷전이 되는 것이다. 순간 목덜미가 가렵다. 어느새 모기들이 흡입을 시작한 모양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문을 닫고 바람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문을 열어둔 채 선풍기 바람을 맞는 대신 모기에게 뜯길 것인가.

결국 나는 1. 불을 켜고, 2. 선풍기를 김 부장에게 고정하고, 3. 방문을 닫고, 4. 눈에 불을 켜고 박수 쳐가며 방 안 모기를 다 잡아 죽인 뒤, 5.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더위에 쪄 죽더라도 모기는 질색이다. 김 부장 취향은 모르지만 그는 바람을 얻었고 모기에겐 노출됐다. 무릇 인생이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 나는 공평한 내 처사에 스스로에게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뒤이어 밀린 잠이 스멀스멀 올라와 더위도 잊을 즈음, 마루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젠장, 김 부장의 코골이가 시작됐다. 모기가 코의 알람이라도 건드렸나보다. 그렇게 코골이 대마왕 김 부장의 공습으로 인해 나는 좀처럼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역시 삶은 공평하지 않다. - <망원동 브라더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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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개발서를 읽는 건 자기를 주도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냥 읽고 있으면 면죄부가 생기는 느낌. 자본주의 사회의 성경이 바로 이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자기 개발서대로 살진 않는다. 그건 성경 말씀대로 살진 않지만 천국에 간다고 믿으며 성경을 읽는 사람들의 심리와 비슷한 거다. - <망원동 브라더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5344491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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