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예술은 서로 닮았다. 경제적 쓸모의 관점에서 보자면 여행은 예술만큼이나 쓸모없는 행위이다. 현실감각을 상실한다는 것에서 그 둘은 닮았다. 여행과 예술탐닉은 서로의 동반자이다. 로베르트 무질 Robert Musil 이 말했듯이사람들이 현실감각을 얻으면 꿈을 잃는다. 여행은 현실감각으로비추어보면 미친 짓이다. 현실감각에 의존한다면, 여행은 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이다. 현실감각을 얻은 대가로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더이상 나무 아래서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로 하늘을보지 않으며, 오로지 일을 만들어내기만 한다. 유능해지기 위해서는 굶주리거나 꿈을 꾸어선 안 되고, 스테이크를 먹고 움직여야 한다. 여행의 이미지를 이처럼 선명하게 잘 보여주는 문장이 또 있을까?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나무 아래서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로 하늘을 보는 것", 나는 발가락 사이로 하늘을 보고 싶었다. 이 책은 발가락 사이로 보았던 하늘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여행에서 인류의 보편언어인 예술을 만났고, 그 보편언어를 내가태어나고 자란 한국어라는 모국어로 옮겨놓는 번역자이다. - P31
여행짐을 꾸릴 때 ‘현장 독서용 책을 선정하는 일은 하나의 즐거운 고민이었다. 즐거운 고민의 시간이 지나면 나의 여행가방엔 어느새 ‘현장 독서‘를 위한 책이 들어 있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들고 파리에 갔고, 페소아의 『불안의 서』는 리스본에서 읽었고, 파묵의 『이스탄불』 은 역시 이스탄불을 접할때 이해하기 쉬웠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읽지 않았다면 그 도시는 그저 서유럽에 대한 콤플렉스를 낳은 도시로만 이해됐을 것이다.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나는 고골의 『외투』 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빈에 갈 때는 당연히 엘리아스의 『모차르트』을 들고 갔고, 엘리아스의 『궁정사회』를 읽고 나서 베르사유에 가니 대중관광 안내서에는 없는 베르사유가 보였다. 파리에서 읽으면 보들레르와 오웰의 작품은 다르게 느껴졌다. 그책들을 그 도시의 어느 카페나 공원에서 혹은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항에서 읽었다. - P33
목적하는 도시에 가면 그 도시가 품고 있는 인류 보편언어의 전당에 갔다. 마드리드엔 ‘프라도’ muso del prado와 ‘티센 보르네미사미술관‘ Thyssen-Bornemisza Museum이 있어서 좋았고, 아부다비에는 ‘루부르 아부다비‘ Louvre Abu Dhabi가, 파리에는 ‘루브르 Louvre ‘오르세‘ Musée d‘Orsay ‘퐁피두 센터‘ Centre Pompidou와 ‘오랑주리‘ Orangorie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에르미타주‘ Hermitage Museum 와 ‘러시아 미술관’Russian Museum 이, 베네치아에 ‘아카데미아‘ Gallerie dell’ Accademia 가, 피렌체엔 ‘우피치‘ Uffizi가, 모스크바에는 ‘트레티아코프’ The State TretyakovGallery가, 빈에는 ‘미술사박물관‘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과 ‘레오폴트 미술관‘ Leopold Museum이 있어서 좋았다. 어떤 도시는 예술의 성소보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풍경에서 더 많은 것을 깨달았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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