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동료들이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중세 문헌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다. 이 문헌은 지금도 희귀서적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명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 대학 도서관에 기증."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6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는 젊은 나이였지만(아버지는 스물다섯 살, 어머니는 겨우 스무 살),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부모는 항상 늙은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서른 살 때 이미 쉰 살처럼 보였다. 노동으로 인해 몸이 구부정해진 아버지는 아무 희망 없는 눈으로 식구들을 근근이 먹여 살리는 척박한 땅을 지그시 바라보곤 했다. 어머니는 삶을 인내했다. 마치 생애 전체가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긴 한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눈은 색이 연하고 흐릿했으며, 뒤로 똑바로 빗어 넘겨 틀어 올린 가느다란 반백의 머리카락 때문에 눈 주위의 잔주름이 한층 도드라져 보였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7

스토너는 9개월 동안 숙식을 해결하는 조건으로 가축들과 돼지에게 먹이와 물을 주고, 달걀을 가져오고, 소젖을 짜고, 장작을 팼다. 그밖에 밭도 갈고, 그루터기도 파냈으며(겨울에는 3인치 두께로 얼어붙은 땅을 파야 했다), 푸트 부인이 버터를 만들 때 우유를 젓는 일도 했다. 목제 교유기가 우유 속에서 첨벙첨벙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푸트 부인은 엄격한 표정으로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를 지켜보았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14

그에게 배정된 2층 방은 예전에 창고로 쓰던 곳이었다. 가구라고는 힘을 잃고 늘어진 틀 위에 얄팍한 깃털 매트리스가 놓인 검은색 철제 침대, 등유 램프를 놓아둔 망가진 탁자 하나, 수평이 잘 맞지 않는 딱딱한 의자 하나, 책상 역할을 하는 커다란 상자 하나가 고작이었다. 겨울에는 바닥을 통해 조금씩 올라오는 아래층의 온기가 전부라서 그는 해진 퀼트 이불과 담요로 몸을 감싸고 자칫 책장이 찢어지지 않게 곱은 손을 후후 불어가며 책장을 넘겼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15

2학년이 된 그는 캠퍼스에서 친숙한 인물이 되어 있었다. 계절과 상관없이 그의 옷차림은 언제나 똑같은 검은색 브로드클로스 양복, 하얀 셔츠, 스트링타이였다. 재킷 소매가 짧아서 손목이 불쑥 튀어나와 있고, 바지 자락도 어색하게 겉돌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제복을 빌려다 입은 것 같은 몰골이었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15

2학년 1학기 때 그는 기초교양 강의를 두 개 들었는데, 하나는 농과대학의 토양화학 강의였고 다른 하나는 모든 학생의 형식적인 필수과목인 영문학 개론 강의였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16

하지만 필수과목인 영문학 개론은 그에게 생전 처음 느끼는 고민과 고뇌를 안겨주었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16

강의를 맡은 아처 슬론 교수는 50대 초반의 중년남자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얕보고 경멸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격이 너무 커서 그 간격을 좁히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싫어했으며, 그는 학생들과 거리를 두고 비꼬면서 즐거워하는 듯한 태도로 응수했다. 키는 평균이었고, 길쭉한 얼굴에는 주름이 깊이 패어 있었으며, 수염은 항상 깨끗이 깎았다. 그리고 갑갑하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반백의 곱슬머리를 빗어 넘기는 습관이 있었다. 목소리는 단조롭고 건조했는데, 그는 표정도 억양도 없이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말하곤 했다. 하지만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의 움직임에는 우아함과 확신이 배어 있어서, 그의 말에 목소리 대신 어떤 형태를 부여해 주는 것 같았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17

그대 내게서 계절을 보리.
추위에 떠는 나뭇가지에
노란 이파리들이 몇 잎 또는 하나도 없는 계절
얼마 전 예쁜 새들이 노래했으나 살풍경한 폐허가 된 성가대석을
내게서 그대 그날의 황혼을 보리.
석양이 서쪽에서 희미해졌을 때처럼
머지않아 암흑의 밤이 가져갈 황혼
모든 것을 안식에 봉인하는 죽음의 두 번째 자아
그 암흑의 밤이 닥쳐올 황혼을.
내게서 그대 그렇게 타는 불꽃의 빛을 보리.
양분이 되었던 것과 함께 소진되어
반드시 목숨을 다해야 할 죽음의 침상처럼
젊음이 타고 남은 재 위에 놓인 불꽃
그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대의 사랑이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사랑하리.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20

때로는 안뜰 한복판에 서서 밤이 내려앉은 서늘한 잔디밭에서 불쑥 솟아오른 제시 홀 앞의 거대한 다섯 기둥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는 이 기둥들이 원래 대학의 주요 건물이었던 곳의 잔해임을 알고 있었다. 그 건물은 오래전 화재로 무너졌다. 달빛 속에서 알몸을 드러낸 채 회색을 띤 은빛으로 빛나는 그 순수한 기둥들은 신전이 신을 상징하듯, 스토너 자신이 받아들인 삶의 방식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알라딘 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