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그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대고 있을 것이다. 여수만(灣)의 서늘한 해류는 멍든 속살같은 푸릇푸릇한 섬들과 몸 섞으며 굽이돌고 있을 것이다. 저무는 선착장마다 주황빛 알전구들이 밝혀질 것이다. 부두 가건물 사이로 검붉은 노을이 불타오를 것이다. 찝찔한 바닷바람은 격렬하게 우산을 까뒤집고 여자들의 치마를, 머리카락을 허공으로 솟구치게 할 것이다. - <여수의 사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920 - P3

그때 나는 얼핏 그 어둠이 자흔의 지성의 그늘일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단지 외로운 표정일 뿐이었다.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기다려온 사람들에게서 손쉽게 발견되는 표정이기도 했다. 열차를 기다리며 승강장에 서 있는 얼굴들, 늦은 밤 버스 손잡이에 매달려 차창 밖의 휘황한 네온 사인을 바라다보는 눈빛들, 출근 무렵 살갗이 터질 듯한 지하철에 올라 말없이 몸 부대끼는 사람들의 메마른 광대뼈 같은 데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기쁠흔(欣)자예요’라고 뇌까리는 자흔의 목소리는 마치 그 모든 사람들의 외로움을 빻아다가 반죽해놓은 흰 떡살같이 고즈넉했다. - <여수의 사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920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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