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적으로 마침내 이런 동일시(同一視)에 이른 순간부터 러시아의 운명은 나의 운명이 되었다. 나는 러시아와 나란히 투쟁하고 고뇌했다. 모스크바에서 지내다가 너무 답답하게 느껴지자 나는 광활한 투쟁의 터전을 모두 ― 북극의 무르만스크에서 부하라와 사마르칸트까지, 레닌그라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원시의 친구들과 적들이 싸우는 모습을 직접 ― 보기 위해 길을 떠났다.
영혼의 자서전 (하)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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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저마다 십자가를 지며, 민족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죽을 때까지 그들을 십자가에 못 박을 자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어깨에 메고 한없이 가기만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자는 부활할지니, 오직 그만이 행복하다. 러시아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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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리스도가 말했듯이, 한 알의 밀알이 이삭으로 되기 위해서는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한다. 러시아는 한 알의 밀알처럼, 하나의 위대한 사상처럼, 비슷한 고통을 거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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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들의 의무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들이 사는 역사상의 순간을 조심스럽게 식별해서 어느 특정한 싸움터에 우리들의 작은 활력을 의식적으로 불어넣는 일이다. 길을 인도하는 흐름에 더 많이 동조하면 할수록, 우리들은 인간이 구원을 향해서 힘들고, 불확실하고, 위험이 산재한 길을 오를 수 있도록 그만큼 더 많이 도와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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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낡은 옷이요 에파포스는 새 옷이었다.
환상보다는 육체를 더 좋아하고, 속담에 나오는 늑대처럼 배를 채우는 문제라면 남들의 약속은 믿지 않는 촉감의 신 에파포스. 그는 눈이나 귀를 믿지 않고, 인간과 흙을 만지고 움켜쥐기를, 그것들의 따스함이 자신의 체온과 뒤섞여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심지어 그는 만지기 쉽게끔 영혼까지도 육체로 바꾸고 싶어 한다. 땅 위를 걷고, 땅을 사랑하고, 〈자신의 모습을 따서 그대로〉 땅을 다시 만들어 놓기를 바라는 가장 믿음직하고 부지런한 신 ― 그것이 나의 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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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약삭빠른 장사꾼들과, 식인종 살인자들과, 신을 싼값으로 팔아 치우는 성직자들과, 뚜쟁이들과 내시들 ― 그들은 왜 살아야 하는가? 술집과, 공장과, 매음굴에서 부모가 차지했던 자리를 왜 어린아이들이 자라서 메워야 하는가? 이런 모든 문제가 길을 가로막아 혼(魂)이 통과하지 못한다. 그나마 세상이 한때 지녔던 혼마저 사상과, 종교와, 예술과 공예, 과학, 법률 따위의 찬란한 문명을 창조하느라고 소모되었다. 이제 세계는 기운이 빠졌다. 야만인들로 하여금 와서 막힌 길을 치우고, 혼이 지나갈 강바닥을 다지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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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들은 인간의 한계점 내에서 일하고 의무를 수행해 나가도록 하자. 언저리에 이르면 입을 벌린 심연이 무서워 피가 얼어붙을지도 모르므로, 우리들은 한계점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언저리에는 세상을 불어 사라지게 하는 위대한 마술사인 붓다가 차분하면서도 독을 품은 미소를 머금고 서서 기다린다. 하지만 우리들은 세상이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고, 그리스도가 세상을 어깨에 메고 천국으로 옮겨 놓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우리들은 그것이 여기에서 우리들과 함께 살고 투쟁하기를 원한다. 우리들은 도예가가 진흙을 사랑하고 탐하듯 세상을 사랑한다. 우리들에게는 가지고 일할 다른 재료가 없고, 씨 뿌려 거둘 혼돈 말고는 단단한 다른 밭이 없다.
영혼의 자서전 (하)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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