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어 내고, 혹자는 일과 좋은 기분을 만들어 내고, 혹자는 신을 만들어 낸다나 어쩐다나 합디다. 그러니 인간에게 세 가지 부류가 있을 수밖에요. 두목, 나는 최악의 인간도 최선의 인간도 아니오. 중간쯤에 들겠지요. 나는 내가 먹는 걸로 일과 좋은 기분을 만들어 냅니다. 뭐,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62
이윽고 그는 춤에다 몸을 맡기고, 손뼉을 치는가 하면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발끝으로 도는가 하면 무릎을 꿇었다 다리를 구부리고 다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흡사 고무로 만든 사람 같았다. 그는 갑자기 미친 듯한 도약을 계속했다. 마치 자연의 법칙을 이겨 내고 날아가고 싶은 듯했다. 그의 늙은 몸속에, 육신을 이끌고 올라 어둠 속에 유성(流星)처럼 같이 날아가 버리려 용을 쓰는 영혼이 하나 있는 것 같았다. 그 영혼은, 공중에 오래는 머물 수 없어서 도로 땅에 떨어지고 마는 몸을 뒤흔들었다. 다시 사정없이 몸을 뒤흔들어, 이번에는 조금 더 높이 솟구쳤지만, 그 불쌍한 육신은 도로 떨어지며 헐떡거릴 뿐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70
내 영혼을 육신으로 채우리라. 내 육신을 영혼으로 채우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저 영원한 두 적대자가 내 안에서 화해하게 만들리라.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80
조르바가 산투르를 싼 천을 벗길 때의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놀림은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았다. 그는 자줏빛 무화과 껍질이나 여자의 옷을 벗기는 것처럼 곰살맞았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86
내 맹세코 말씀올립지요만, 두목, 쓰레기 같은 책만 잔뜩 집어넣어 놓은 당신 머리가 이해할 턱이 없겠소만, 이건 정말 맹세할 수 있어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발에는 에나멜 장화가 척 신겨지고, 머리에는 깃털 모자가 씌워지고, 보드라운 수염에서는 파촐리 향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답니다. 〈Buon giorno! Buona sera! Mangiate macaroni!(좋은 아침! 좋은 저녁! 마카로니 드세요!)〉 나는 진짜 카나바로가 되는 겁니다. 나는 수천 발의 총탄을 맞은 역전의 기함(旗艦)에 척 올라 떠나가는 겁니다……. 보일러에 불을 댕겨! 포격 개시!」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90
할아버지는 백 살 되던 해에도 문 앞에 앉아 우물로 물 길러 가는 처녀 아이들에게 추파를 던지고는 했지요. 그러나 시력이 좋지 않아 똑똑히 볼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처녀 아이들을 가까이 오라고 불렀지요. 〈어디 보자, 네가 누구더라?〉 〈마스트란도니 집 딸 크제니오예요.〉 〈가까이 오너라. 어디 좀 만져 보자. 오래두. 겁낼 것 없느니라!〉 처녀 아이는 예의에 맞는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다가갑니다. 그러면 우리 할아버지는 손을 들어 천천히, 그리고 아주 육감적으로 얼굴을 쓰다듬지요. 그럴라치면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답니다. 〈할아버지, 왜 우세요?〉 내가 언제 할아버지께 여쭈어 봤지요. 〈얘야, 내가 저렇게 많은 계집아이들을 남겨 놓고 죽어 가는데 울지 않게 생겼니?〉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91
후유…… 불쌍한 우리 할아버지! 내가 할아버지 말씀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아시오? 나는 이따금 이렇게 한탄하지요. 〈아, 제기랄! 참한 계집들은 나 죽을 때 몽땅 죽어 버렸으면!〉 하지만 그 잡것들은 계속 살아 있을 거고, 여전히 뜨끈뜨끈하게 재미 보고, 사내들은 그런 것들을 끼고 주물럭거리겠죠, 나는 그것들이 밟고 다닐 흙이 되어 있을 텐데!」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91
우리는 둘 다 기분이 한껏 고조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술을 많이 마셔서라기보다는 우리 내부의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으로 인한 것이었다.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가 이 땅거죽에 꼭 매달려 있는 두 마리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음을 깊이 의식하고 있었다. 그 하루살이들이 바닷가에 대나무와 판자와 빈 드럼통 몇 개로 둘러친 편안한 구석을 찾아내고 거기에 함께 매달려 있으며, 또한 앞에는 유쾌한 일과 음식이 있고, 가슴엔 평온과 애정과 평화가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93
그런 식으로 나는 치모(恥毛)를 수집했지요. 검은 털, 금빛 털, 붉은 털, 심지어는 흰 털도 더러는 있었지요. 꽤 많이 모아 그걸로 베갯속을 채웠지요. 나는 이걸 베고 잤지요. 하지만 겨울에만……. 여름에 이걸 베고 자려면 너무 더워요. 그런데 좀 지나고 보니까 그 짓도 심드렁해졌는데…… 아시겠지만 냄새도 몹시 나고 해서 그만 태워 버렸지요. 히히히, 두목, 그게 내 장부였던 셈이지요. 장부를 태워 버린 거예요. 나는 그 짓이 심드렁했던 겁니다. 털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이러다간 한도 끝도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가위까지 버리고 말았어요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95
그런데 장바닥을 어슬렁거리다 나는 달구지에서 뛰어내리는 농사꾼 여자 하나를 보았지요. 6척의 훤칠한 키에 눈빛이 바다같이 푸르고 허벅지와 엉덩이…… 이건 완전히 씨받이 암말이에요! 나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지요. 〈우리 불쌍한 조르바, 오, 불쌍한 조르바!〉 하고.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97
두목, 러시아에 가면 뭐든 푸짐해요.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니까. 뒹굴며 고르기만 하면 돼요. 참외와 수박뿐만 아닙니다. 고기와 버터, 여자도 흔했지요. 지나가다 수박밭을 만나면 하나 따먹으면 됩니다. 그리스와는 형편이 다르지요. 여기서야 수박 껍질을 핥아 보기도 전에 법정으로 끌려가고, 여자 몸에 손도 대기 전에 오빤가 뭔가가 달려 나와 칼로 소시지를 만들지 않는 게 이상하죠. 지겨워! 이 거지 같은 것들은 무더기로 지옥에다 처박아 버리든지 해야지, 원! 정승같이 사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싶으면 러시아로 가면 되지요.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03
슬라브 여자는, 한 번에 한 방울씩 쨀끔쨀끔 사랑을 팔아먹고 값어치에 못 미치는 걸 주면서 그나마 저울눈까지 속여 먹는 욕심쟁이에다 말라깽이 그리스 여자들과는 턱도 없이 달라요. 두목, 슬라브 여자들은 안 그래요. 뭐든지 듬뿍 줍니다. 잠잘 때도 그렇고, 사랑할 때도 그렇고, 먹을 때도 그렇습니다. 슬라브 여자들은 들짐승하고 아주 촌수가 가까워요. 이 대지하고도 그렇고. 줄 때는 기분 좋게 줍니다. 따지기 좋아하는 그리스 여자들처럼 깨죽거리는 법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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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04
「그야 물론 여자지요! 여자가 영원한 사업이란 이야기는 대체 몇 번이나 해야 합니까? 현재의 당신은 양 꼬리가 두 번 까딱거릴 시간에 암탉을 찍어 누르고는 가슴을 턱 펴고 똥 더미 위에 올라가 뻐기며 한바탕 우는 수탉과 다름없어요. 암탉은 보지 않아요. 볏만 봅니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걸 알 턱이 없지요.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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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11
「있을 턱이 없지 않소! 누가 뭐라 해도 말이오, 여자는 종류가 달라요, 두목…… 종류가 달라. 인간이 아니라고! 그런데 뭣 하러 야속한 감정을 품어? 여자는 불가사의한 거예요. 법도 종교도 여자를 완전히 잘못 보고 있어요. 여자를 그렇게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두목, 그건 너무 가혹하고 너무 부당해요. 내가 법을 만든다면 남자와 여자에게 같은 법을 만들어 적용하지는 않겠어요. 남자에겐 열 계명, 백 계명, 천 계명이 있어도 돼요. 결국 남자는 인간이니까, 감당할 수 있어요. 그러나 여자에게는 하나의 율법도 안 돼요. 왜냐, 아니 두목, 이놈의 이야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야 하는 겁니까, 여자는 힘이 없는 생물이오. 두목, 누사를 위해 마십시다. 그리고 여자를 위해……!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 남자들에게 분별력을 조금 더 허락하셨으면!」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13
떠나면서 나더러 책벌레라고 했던 말 기억할 걸세. 그 말이 적잖게 마음에 걸렸던 나는 종이에다 끼적거리는 버릇을 한동안 ─ 아니면 영원히? ─ 집어치우고 행동하는 삶 속에 뛰어들기로 결심을 했다네. 나는 갈탄이 매장된 산 하나를 빌렸네. 나는 여기에서 인부를 고용하고 직접 곡괭이, 삽, 아세틸렌 램프, 소쿠리, 손수레를 쓰고 다루네. 내 손으로 갱도를 열고 들어가기도 하지. 자네 말을 무색하게 하려고 이러는 것이야. 갱도를 타고 땅속에다 길을 내는 것으로 책벌레는 두더지가 된 셈이지. 자네는 나의 이 변신을 인정해 주었으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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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17
이곳에서 내가 느끼는 기쁨이 대단하다네. 아주 단순한 기쁨들이어서 그렇고, 맑은 공기, 태양, 바다, 밀빵 같은 영원한 요소들에서 나오는 기쁨이어서 그렇다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17
내 심장은 베틀의 북처럼 가슴속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네. 이 북이 내가 크레타에서 보내는 요 몇 달의 시간을 직조하는 중이고, 나는 ─ 하느님이 나를 용서하시길! ─ 행복하다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18
자네가 즐겨 입에 올리던 〈국가〉와 〈민족〉 같은 개념, 나를 매혹시키던 〈초국가〉, 〈인간성〉 같은 개념은 여기 파괴의 전능한 입김 아래에서는 매한가지일 뿐이라네. 우리는 수면 위로 떠올라 몇 마디 하거나, 어떨 때는 몇 마디는커녕 〈아!〉, 〈예!〉 따위의 불명확한 외마디 소리를 내뱉고는 파괴되고 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네. 그리고 아무리 고귀한 사상이라 해도 해체해 보면 겨를 잔뜩 채운 꼭두각시 인형에 지나지 않고 그 겨 속에 숨어 있던 용수철이 드러나 버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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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밖을 향했다. 바로 그 순간 숱 많은 머리채를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검은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 올린 채 빗속을 달려가는 여자가 보였다. 탄탄하고 둥그스름한 몸매가 비에 젖어 달라붙은 옷 위로 드러나 고혹적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31
나는 흠칫했다. 〈웬 맹수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 여자는 나긋나긋하면서도 위험한, 사내를 잡아먹는 동물처럼 느껴졌다.
여자는 잠깐 고개를 돌려 현혹하는 듯한 눈빛으로 카페 안을 흘긋 들여다보았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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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르바의 말이 옳다는 건 나도 알았다. 그러나 그럴 용기가 내겐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인생의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타인과의 접촉은 이제 나만의 덧없는 독백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에 대한 책을 읽는 것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44
여자라는 건 목소리에 껌뻑 죽는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하기야 여자가 뭐엔들 껌뻑 안 죽겠어요…… 갈보들! 여자 속은 하느님 아니면 아무도 모를 거예요. 더없이 추하고 절름발이에다 곱사등이라도 목소리 하나만 근사하면 노래로 여자를 돌아 버리게 할 수도 있어요.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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