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분〉은 맛이 기가 막힙니다. 사모님이신 키리아 마룰리아 할머니께서 그 부분만 모아다 선생님을 위해 특별 요리를 만드신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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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가을 해까지 따사롭게 비치는, 아주 좋은 날씨였다. 우리는 집 앞, 조그만 뜰에 앉았다. 위로는 열매를 잔뜩 맺은 올리브 나무가 있었다. 은빛 잎새 사이로 멀리 평화롭게 잠든 바다가 보였다. 희끗한 구름이 쉴 새 없이 태양 앞을 지나쳐 그럴 때마다 대지는 숨이라도 쉬는 듯이 슬퍼 보이다, 기뻐 보이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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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요, 필요한 건 하느님이 다 가지고 계시겠지요.」 조르바가 영감의 귀에다 입술을 대고 소리를 질렀다. 「하느님이 가지고 계시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 늙은 자린고비가 글쎄, 우리에겐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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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식인종처럼 조용히, 그리고 만족스럽게 그 진미를 먹고 붉은 포도주를 마시면서, 석양에 분홍빛으로 변한 바다를 은빛 올리브 가지 사이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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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타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낡은 세계는 구체적이고 견고하다. 우리는 그 세계를 살며 순간순간 그 세계와 싸운다. 실재하는 세계다. 미래의 세계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을 빚는 재료인 빛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광풍 ─ 사랑, 증오, 상상력, 행운, 하느님 ─ 에 휩쓸린 한 조각 구름이다. 지상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표어를 줄 수 있을 뿐이다. 그 표어가 막연할수록 선지자는 더 위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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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을 고스란히 품은 채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에 단단히 뿌리 박고 선 이 조르바의 겨냥이 빗나갈 리 없다. 아프리카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온몸으로 땅을 쓰다듬는 뱀은 대지의 모든 비밀을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뱀은 배로, 꼬리로,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뱀은 늘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한다. 조르바의 경우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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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죽은 듯이 고요했다. 유성들의 일제 공격을 받았지만 대지는 미동도 신음도 없었다. 개도 짖지 않았고 밤새도 지저귀지 않았다. 은밀하고 위험한, 완전한 정적. 그 정적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무수한 절규들이었다. 너무 먼 곳, 우리 내면의 심연에서 흘러나오고 있기에 우리가 듣지 못하는 절규들이었다. 나는 오직 내 관자놀이와 목의 정맥을 흐르는 피의 맥동만을 분간할 수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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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가 제 구실을 하면서 정적이 외침 소리가 되었다. 마치 내 영혼도 그 노래로 이루어져 있어, 그 소리를 들으려고 몸을 빠져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허리를 굽히고 바닷물을 한 움큼 길어 올려 이마와 관자놀이를 축였다. 정신이 좀 드는 기분이었다. 내 존재의 심연에서 절규들이 험악하게, 혼란에 빠져, 고통을 드러내며 메아리치고 있었다. 호랑이는 내 안에 있고 포효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목소리를 분명하게 들었다. 붓다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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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떨었다. 붓다의 윤회 바퀴가 나를 싣고 떠난다. 이제 초자연적인 짐에서 나 자신을 해방시킬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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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급히 갈겨썼다. 바빴다. 붓다는 내 안에서 모든 준비를 갖추고 있었고, 나는 붓다가 상징으로 뒤덮힌 푸른 띠처럼 나의 뇌에서 풀려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띠는 빠른 속도로 풀려 나왔다. 나는 따라잡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나는 썼다. 모든 것은 간단, 극히 간단했다. 쓰는 게 아니라 받아 적는 것이었다. 자비와 체념과 공(空)으로 이루어진 전 세계가 내 앞에 나타났다. 붓다의 궁전들, 후궁의 여인들, 황금 마차, 세 번의 숙명적인 만남(늙은 자와 병든 자와 죽은 자), 출가, 고행, 해탈, 중생 제도의 선포. 땅은 노란 꽃으로 뒤덮였다. 거지들과 왕들은 황색 가사를 입었다. 돌과 나무와 육신은 가벼워졌다. 영혼은 바람이 되고, 바람은 정신이 되었으며, 정신은 무(無)가 되었다……. 손가락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멈출 수도 멈추고 싶지도 않았다. 환상은 살같이 지나가며 사라지려 했다. 나는 그 환상을 따라잡아야 했다.

아침에 조르바는, 원고에다 머리를 처박고 자는 나를 깨워야 했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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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을 때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펜을 너무 오래 잡고 있었던 탓에 오른손 마디가 뻣뻣했다. 손가락을 오므릴 수가 없었다. 붓다의 폭풍이 나를 엄습하여 내 육신을 지치고 텅 비게 만들어 놓고 떠난 것이었다.

나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흩어진 원고를 주웠다. 그러나 그 원고를 읽을 힘도, 읽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돌연한 영감의 돌풍은 한갓 꿈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언어에 감금되고 언어에 의해 타락해 있는 그것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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