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자, 갑시다!」 내가 일어서며 소리쳤다. 「하느님뿐만 아니라 악마도!」 조르바가 조용히 덧붙였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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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때로 나는 연민에 휩싸였다. 형이상학적인 삼단 논법의 결론만큼이나 차가운 불교적 자비심 같은 것이었다. 인간만을 향한 자비심이 아니라, 발버둥치고 울고 소리치고 소망하며 만사 무상(無常)의 허깨비임을 알지 못하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향한 자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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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아주 잘 지냈지요. 그런데 악마가 훼방을 시작했습니다. 크레타에 혁명이 일어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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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다니 뭘? 내가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인이라고 부르는 것, 악행이라고 부르는 것도 세계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는 필요한 것이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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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고 긴 이야기를 꼭 해야 하는 거요?」 조르바의 말투가 퉁명스러워졌다. 「보세요, 내 말씀드립지요만, 이 세상은 수수께끼, 인간이란 야만스러운 짐승에 지나지 않아요. 야수이면서도 신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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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정열에서 풀려나와 다른 더 고상한 정열의 지배를 받는 것. 그러나 이 역시 예속의 한 형태가 아닌가? 이상을 위하여, 종족을 위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한다? 우리의 지향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더 길어지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훨씬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의 한계에 이르지 않은 채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자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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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노래가 내가 선 대지에서 솟아나 내 존재의 심연으로 들어왔다. 〈내 언제면 혼자, 친구도 없이, 기쁨과 슬픔도 없이, 오직 만사가 꿈이라는 신성한 확신 하나에만 의지한 채 고독에 들 수 있을까? 언제면 욕망을 털고 누더기 하나만으로 산속에 묻힐 수 있을까? 언제면 내 육신은 단지 병이며 죄악이며 늙음이며 죽음이란 확신을 얻고 두려움 없이 숲으로 은거할 수 있을까. 언제면, 오, 언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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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끗희끗한 황갈색 머리카락에 키가 작고 몸집이 실팍한 여자가 안짱다리 걸음으로 아장거리며 포플러 밑을 걸어 나왔다. 턱에는 털까지 돋아난 점이 있었다. 목에는 붉은색이 짙은 벨벳 리본을 돌려 감고 있었고 쪼그라진 뺨에는 자줏빛 분 자국이 드러나 보였다. 조그만 머리 타래가 이마에서 찰랑거리는 품이 연극 「새끼 독수리」에 출연하던 만년의 사라 베르나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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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는 뒤를 따르며 벌써 탐욕스러운 눈길로 뒷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가 속삭였다. 「두목, 저것 좀 보쇼. 저 잡년이 궁둥이 흔드는 것 좀 봐요, 삐뚤빼뚤! 꼬랑지에 기름이 잔뜩 오른 암양 같군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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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는 실룩거리는 오르탕스 부인의 엉덩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수염만 쥐어뜯다가 갑자기 한숨을 쉬고는 웅얼거렸다
「하이고, 산다는 게 다 뭔지! 저 잡년이 끝내 사람 속을 뒤집어 놓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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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내 가슴도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절박하고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가 내 내부에서 일었다. 나는 나를 소리쳐 부르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았다. 혼자 있을 때면 어김없이 이 존재는 끔찍한 예감들과 견딜 수 없는 두려움과 격정에 사로잡혀 내가 해방해 주기만을 기다리며 내 안에서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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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둘러 내 길동무 단테를 폈다. 그 두려운 악마의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그것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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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동안 단테의 시편은 시인의 조국에서 애송되어 왔다. 사랑의 노래가 소년 소녀에게 사랑을 준비하게 만드는 것처럼 이 뜨거운 피렌체 사람의 시구는 이탈리아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유의 날을 예비하게 했다. 대(代)를 이어 사람들은 시인의 혼과 대화를 나누었고 마침내 노예 생활을 자유로 바꾸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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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에는 영혼이란 게 있습니다. 그걸 가엾게 여겨야지요. 두목, 육체에 먹을 걸 좀 줘요. 뭘 좀 먹이셔야지. 아시겠어요? 육체란 짐 싣는 짐승과 같아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두목을 팽개치고 말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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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용히 있었다. 두 갈래의 똑같이 험하고 가파른 길이 같은 봉우리로 이끌 수도 있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사는 거나,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조르바가 물었을 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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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은 갓 쪄낸 육반처럼 김이 무럭무럭 납니다. 먼저 먹읍시다. 먼저 배를 채워 놓고 그다음에 생각해 봅시다. 모든 게 때가 있는 법이지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건 육반입니다. 우리 마음이 육반이 되게 해야 합니다. 내일이면 갈탄광이 우리 앞에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 마음은 갈탄광이 되어야 합니다. 어정쩡하다 보면 아무 짓도 못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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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냄비를 들어다 우리 앞에 놓았다. 그러나 부인은 선 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접시가 세 개 놓인 걸 본 것이었다. 기쁜 나머지 얼굴이 빨개진 여자는 조르바를 바라보며 보랏빛 감도는 파란색 조그만 눈을 파르르 깜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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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혼이라는 이름의 짐을 지고 다니는 육체라는 이름의 짐승을 실컷 먹이고 마른 목은 포도주로 축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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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제독에게는 오드콜로뉴 냄새가 났고, 프랑스 제독은 바이올렛, 러시아 제독은 사향 냄새, 이탈리아 제독은, 아유, 그러니까 파촐리 냄새가 났어요. 세상에 그렇게 멋진 수염이 또 있을까.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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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련을 끊게. 불을 붙여 반쯤 피우다 나머지를 내버리다니……. 담배에 대한 자네 사랑은 고작 1분간이야. 창피한 노릇이지. 파이프로 피우는 게 좋을 걸세. 충실한 마누라 같지. 자네가 집에 가면, 거기 조용히 자넬 기다리고 있거든. 불을 붙이고 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면, 내 생각이 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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