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 도시 피레에프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때 항구에서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밝기 직전인데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북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시로코 바람이, 유리문을 닫았는데도 파도의 포말을 조그만 카페 안으로 날렸다. 카페 안은 발효시킨 샐비어술과 사람 냄새가 진동했다. 추운 날씨 탓에 사람들의 숨결은 김이 되어 유리창에 뽀얗게 서려 있었다. 밤을 거기에서 보낸 뱃사람 대여섯이 갈색 양피 리퍼 재킷 차림으로 앉아 커피나 샐비어 술을 들며 희끄무레한 창 저쪽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나운 물결에 놀란 물고기들은 아예 바다 깊숙이 몸을 숨기고 수면이 잔잔해질 때를 기다릴 즈음이었다. 카페에 북적거리고 있는 어부들은 폭풍이 자고 물고기들이 미끼를 쫓아 수면으로 올라올 때를 기다렸다. 서대, 놀래기, 홍어가 밤의 여로에서 돌아올 시각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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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친구와 서서히 헤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쓰라린 일인가! 단칼에 베듯 이별해 버리고서 고독 속에 남는 편이 훨씬 나으리라……. 고독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상태니까. 그러나 그 비 오던 새벽에 나는 친구를 놓아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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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저 동방의 신성한 땅, 신들의 고향, 프로메테우스가 바위에 붙박인 채 울부짖던 높은 산을 생각했다. 우리 그리스 동포들이 바로 그 바위에 붙박힌 채 울부짖고 있었다. 그들은 또다시 위난에 처해, 그리스의 자손들을 향해 울부짖으며 구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호소를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마치 고통은 한갓 꿈이며, 인생은 재미있는 연극이어서 촌놈이나 바보만이 무대로 뛰어올라가 연기(演技)에 가담한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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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뻘 속에 갇혀 있어서 무디고 둔한 것이다. 영혼의 지각 능력이란 조잡하고 불확실한 법이다. 그래서 영혼은 아무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는 예견할 수 없다.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우리 이별은 얼마나 다른 것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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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리비아와 마주 보는 크레타 해안에 폐광이 된 갈탄광 한 자리를 임차했다. 이제 책벌레 족속들과는 거리가 먼 노동자, 농부 같은 단순한 사람들과 새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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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머니에서 단테 문고판 ─ 내 여행의 동반자 ─ 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벽에 기대어 편안하게 앉았다. 나는 한순간 망설였다. 어디를 읽는다? 「지옥편」의 불타오르는 역청? 「연옥편」의 정화(淨化)하는 불길? 아니면 인간의 희망이 최고의 감정 기준이 되는 대목으로 바로 들어가? 나에겐 선택권이 있었다. 문고판 단테를 손에 들고 나는 자유를 즐겼다. 아침 일찍 고르는 단테의 시행이 하루 전체에 그 리듬을 부여하게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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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스 조르바. 내가 꺽다리인 데다 대가리가 납작 케이크처럼 생겨 먹어 〈빵집 가래 삽〉이라고 부르는 친구들도 있지요. 한때 볶은 호박씨를 팔고 다녔다고 해서 〈심심풀이〉 라고 부르는 치들도 있었고…… 또 〈흰곰팡이〉라는 별호도 있습니다. 이렇게 부르는 놈들 말로는, 내가 가는 곳마다 장난질을 쳐서 그렇답니다. 모든 게 개판이 된다고. 그 밖에도 별호가 많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루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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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알겠다. 조르바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母胎)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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