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급한 작품은 쓰고 싶지 않습니다. 새삼 깨달았는데, 지금 쓰는 작품에는 제법 불쾌한 인물들이 꽤 등장하는 것같아요. 워낙 거친 환경에서 소설을 배운지라 아마 전에는 그다지 의식하지 못했던 거겠지요. 그때는 느리다 못해 때로는 지루한 상황 연결보다. 한 인물이 증거에 입각해서 상황을 이해하고밝혀서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지점에 더 관심을 두었죠. 내 초기작을 접한 평론가들은 그런 점에 흥미가 없었을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그 점이 중요했어요. - P22

자동적으로 영상화되지 않으면서 어떤 독자가내 글을 읽든, 실망시키지 않는 무언가를 써 보고 싶어서요. 『빅슬립은 사실 굉장히 균일하지 못하게 쓴 작품이죠. 그런대로 괜찮은 장면들도 있지만, 어떤 장면들은 지나치게 저속해요. 할수만 있다면, 객관적인 방식을 서서히 발전시켜서, 독자를 정말로 드라마틱하고 심지어는 멜로드라마틱한 소설로 이끌고 싶습니다. 스타일은 아주 생생하고 예리하지만, 지나친 속어나 은어는 쓰지 않은 소설로요. 그런 방식은 신중하게, 아주 조금씩시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힘을 잃지 않으면서도 섬세함을 얻는 것, 그것이 관건이죠. 어쨌거나 다른 무언가를 시도하기 전에 적어도 장편 소설 세 편은써 봐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요.
(1939년 2월 19일) - P23

내가 ‘의미의 하찮음‘이라는 제목으로 당신 잡지에 글을 써도되겠습니까? 내 평소의 사창가 스타일로 이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소설이 무엇인지는 쥐뿔만큼도 중요치 않다. 어느 시대 어느 때건 가장 좋은 소설은 언어로 마법을 부리는 소설이다. 소재는 단지 작가가 상상력을 풀어놓을 도약판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렇게 불릴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이라는 예술은, 무에서출발해서 적어도 삼백 년 동안 인공적인 체계를 발전시켜 왔으며, 이제 구조적으로는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라서 소설가를 구별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뷰트의 광부들에 대해 쓰는지, 중국의 쿨리들에 대해 쓰는지, 브롱크스의 유대인에 대해 쓰는지,
롱아일랜드의 증권 중개인에 대해 쓰는지 등등뿐이다. - P31

글의 특색이란 작가의 감정과 통찰의 본질에 따른 산물이죠. 그특색이 감정과 통찰을 종이로 옮겨 작가가 되게 하는 자질이고,
반대로 똑같이 좋은 감정과 예리한 통찰력을 지녔다 해도 그걸종이로 옮기지 못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만들어진 작가몇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할리우드에는 당연히도 그런 사람이가득해요. 그런 자들의 작품은 그 즉시엔 지적이고 유려하고 세련되게 충격을 가하곤 하지만, 그 속은 텅 비어 있고 누구도 다시 돌아보지 않지요. 어쨌건 나는 돌아보지 않습니다. - P36

아, 제길, 아무렴 어때요. 생각이란 독입니다. 생각을 많이 할수록 창조는 줄어들 뿐입니다.
(1947년 10월 28일) - P39

내 이론은 독자들이 행동에만 신경을 쓰는게 아니라, 본인들도 깨닫지 못하지만, 사실 행동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독자들과 나의 관심사는 대화와 묘사를 통해 만들어지는 감정입니다.
독자들에게 기억되고 각인되는 건 이를테면 한 남자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죽음이 닥친 순간, 그는 매끄러운 책상 위에 놓인 클립을 집으려고책상 위를 긁고 있었고, 클립이 자꾸만 미끄러져서 불만스러운표정이 얼굴에 가득했으며, 그의 입은 고통스럽다는 듯 이를 드러내며 반쯤 벌어져 있었고, 그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떠올린것이 죽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죽음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죠. 그 망할 클립이 자꾸 손가락에서 미끄러졌고, 그는 그저 책상 모서리로 그 클립을 밀어 떨어지게 해서 잡을 수 없었던 겁니다.
(1948년 5월 7일)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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