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기이한 사실은 그 두 세계가 서로 맞닿아 있다는 것이었다. 두 세계가 서로 얼마나 가까이 있었던가!

데미안 | 헤르만 헤세, 김인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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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라틴어 학교에 다녔다. 시장과 삼림 감독관의 아들들이 같은 반이어서 우리는 이따금 함께 어울려 놀았다. 그 아이들은 거친 녀석들이었지만 선하고 허용된 세계에 속했다. 그런데도 나는 이웃집 아이들, 우리가 평소에 무시하는 일반 공립 학교 학생들과 가까이 지냈다. 그 학생들 중의 한 명에 대한 말로 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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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와 함께 있는 게 무척 가슴 조마조마했다. 우리 아버지가 그와 어울리는 걸 알게 되면 만나지 못하게 하실 게 뻔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프란츠 자체가 두렵기 때문이기도 했다. 프란츠가 나를 끼워 주고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해 주어서 나는 기뻤다. 그는 명령했고 우리는 복종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그와 어울렸는데도 마치 오래전부터 그래 온 양 익숙하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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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가 한 팔로 나를 감싸 안아 바싹 끌어당기는 바람에 그의 얼굴이 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두 눈에 악의가 번득였고 심술궂은 미소를 지었다. 얼굴에 잔인함과 힘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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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96 - P25

나는 위층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내 인생은 파탄 났다. 그 길로 멀리 달아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거나 아니면 물에 빠져 죽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구체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우리 집 층계의 맨 아래 계단에 앉아 몸을 잔뜩 웅크리고는 불행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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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내게 비밀이 생겼으며 나 혼자 힘으로 감당해야 하는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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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체험의 가장 잊히지 않는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 순간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존엄성을 가른 최초의 균열이었으며, 내 어린 시절을 떠받치던 기둥들,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 무너뜨려야 하는 기둥들을 가른 최초의 칼자국이었다. 우리 운명의 본질적이고 내밀한 항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체험들로 이루어진다. 그런 칼자국이나 균열은 다시 살에 덮이고 아물어 기억에서 잊힌다. 하지만 가장 비밀스러운 방 안에서는 계속 살아남아 피를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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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 나의 즐겁고 행복한 삶이 어떻게 과거가 되고 어떻게 내게서 떨어져 나가는지 얼어붙는 심정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내가 저 바깥의 어둡고 낯선 곳에 자양분을 빨아들일 새로운 뿌리를 어떻게 단단하고 깊게 내리는지 감지해야 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죽음을 맛보았다. 죽음의 맛은 씁쓸하다. 죽음은 탄생이며 섬뜩한 갱생에 대한 두려움이고 공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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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크로머와 그의 세계를 향해 다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으며 그런 식으로 계속 한 발 한 발 멋지게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 느껴졌다. 나는 거기에 저항했다. 하지만 악마에게 잡혀간다 해도 이제는 돌아갈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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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러 번 빈손으로 나타나자, 내 악마는 다른 방법으로 나를 괴롭히고 이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크로머를 위해 일해야 했다. 그가 자기 아버지의 이런저런 심부름을 하게 되면, 내가 그 심부름을 대신해야 했다. 또는 내게 힘겨운 일을 시키기도 했다. 이를테면 10분 동안 한쪽 다리로 껑충껑충 뛰거나 지나가는 사람의 상의에 종잇조각을 붙여야 했다. 밤마다 꿈속에서 그런 괴롭힘을 당했고 가위에 눌려 식은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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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나는 일종의 정신 착란 상태에 있었다. 우리 집의 질서 정연한 평온 한가운데서 나는 고통스럽게 겁에 질려 유령처럼 살았다. 가족들의 삶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나 자신을 거의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종종 흥분하셔서 무슨 일이냐며 다그치셨지만, 나는 마음을 닫고 차갑게 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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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구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찾아왔다. 그 구원과 더불어 내 삶에 새로운 것이 등장했으며, 그것은 지금까지도 줄곧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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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 라틴어 학교에 새로운 학생이 전학을 왔다. 그 학생은 우리 도시로 이사 온 부유한 미망인의 아들이었으며 팔소매에 검은 상장(喪章)을 두르고 다녔다. 나보다 한 학년 위였고 나이는 몇 살 많았지만 내 눈에 금방 띄었다. 아니, 모든 학생들의 눈에 금방 띄었다. 그 특이한 학생은 실제보다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였으며 전혀 소년 같지 않았다. 우리 어린 사내아이들 사이에서 그는 어른처럼, 아니 신사처럼 낯설고 성숙하게 처신했다.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노는 데 끼지 않았으며 더욱이 싸움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만 선생님들 앞에서 당당하고 단호하게 말하는 어조가 다른 아이들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그의 이름은 막스 데미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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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모든 점에서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개성이 완전히 뚜렷하고 독특했으며, 그래서 눈길을 끌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눈길을 끌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마치 농부의 자식들 사이에서 자신도 농부의 자식인 양 보이려고 온갖 애를 쓰는 변장한 왕자처럼 처신하고 옷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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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거 같아. 물론 우리가 배우는 것들은 대부분 진실이고 올바르지만, 전부 선생님들이 보는 것과는 다르게 볼 수도 있거든. 그러면 대개는 훨씬 더 좋은 의미를 갖게 돼. 예를 들어 카인과 그의 이마의 표식 이야기도 선생님의 설명만으로는 뭔가 만족스럽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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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이 그런 일들을 말하는 방식은 근사했다. 모든 게 자명한 듯 경쾌하고 멋졌다. 게다가 그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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