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미술사 좀 공부했다는 사람들은 트레첸토, 콰트로첸토, 친퀘첸토로 르네상스를 시기적으로 나눕니다.
이탈리아어로 트레첸토는 300을, 콰트로첸토는 400을, 친퀘첸토는 500을 뜻하죠.
즉 14세기의 르네상스는 트레첸토 르네상스, 15세기는 콰트로첸토 르네상스, 16세기는 친퀘첸토 르네상스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르네상스 작품들은 15세기 콰트로첸토 르네상스 때 나온 작품들이에요.
그런데 피렌체에서는 트레첸토 르네상스가 콰트로첸토 르네상스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이 시기에 일어난 경제 부흥은 중세부터 르네상스까지의 피렌체를 만들어낸 중요한 토대가 되거든요. - P205

중세 피렌체의 경제는 크게 세 개의 축으로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지중해 중계무역입니다.
피렌체는 내륙에 위치했지만, 나름대로 주변의 항구들을 이용해 지중해 무역에 뛰어들어 상당한이윤을 얻었습니다.
두 번째는 섬유 산업입니다.
피렌체 장인들은 비단과 모직물을 생산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이었죠. 게다가 산업 규모도 상당했어요. 모직 산업에 종사하는 기술자만 3만 명이었으니 웬만한 중세 도시국가의 전체 인구보다 많았습니다.
세 번째는 앞서 주목했던 은행업입니다.
피렌체는 유럽 은행의 중심이었어요. 당시 돈이 필요한 사람은 피렌체로 가는 게 자연스러웠습니다. - P207

그렇죠. 피렌체뿐만 아니라 당시 이탈리아 전체에서 워낙 은행업이번창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금융 용어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은행가들은 자기 앞에 조그만 테이블을 놓고 손님을 상대했는데, 테이블은 중세 이탈리아어로 ‘방카Banca‘라고 합니다. 은행을 뜻하는 영어 단어 ‘뱅크Bank‘는 여기서 유래한 말이죠. 또 은행이 파산할 때 이 테이블을 부숴버렸다고 해서 ‘뱅크럽트Bankrupt(이탈리아어로는 방카 로타Banca rotta)‘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 P207

르네상스의 본고장이라 할 만한 피렌체는 11세기부터 상공업으로 부를 축적했고,
상공인들의 조합인 길드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공화정을 유지했다.
피렌체 사람들은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구성원들의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환경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 자부심은 피렌체의 각종 거대한 건축물에 잘 드러난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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