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내가 해저를 느리게 유영하는 심해어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냄새의 진원지는 실낱 같은 빛이 비치는 곳. 물고기는 어둠 속에서 그 희붐한 빛을 향해 천천히 헤엄쳐 가야 합니다. 모래에 감춰진 산호나 심해 곳곳에 좌초된 난파선의 뾰쪽한 잔해에 찔리지 않도록 가능한 한 느리게 나아갈 것.
눈 어둡고 심약한 물고기여, 두려움을 헤치고 그곳에 가야만 비로소 이 지독한 심해의 압력에서 해방될 수 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306 - P11
혼자 죽은 채 방치되는 사건이 늘어나 일찍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고독사 선진국 일본. 그 나라의 행정가들은 ‘고독’이라는 감정 판단이 들어간 어휘인 ‘고독사孤獨死’ 대신 ‘고립사孤立死’라는 표현을 공식 용어로 쓴다. 죽은 이가 처한 ‘고립’이라는 사회적 상황에 더 주목한 것이다. 고독사를 고립사로 바꿔 부른다고 해서 죽은 이의 고독이 솜털만큼이라도 덜해지진 않는다. 냉정히 말해서, 죽은 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자 편에서 마음의 무게와 부담감을 덜어보자는 시도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306 - P64
수십억 원대의 빚을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며 갚아나간다고 용기 있게 고백한 가수 출신의 방송인에게 채권자들이 건강보조식품을 보내주며 응원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마음이 복잡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때는 차라리 웃는 편이 나을까? 돌려받을 돈이 있는 자는 그 누구보다 빚진 자가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아 있길 바랄 것이다. 빚을 모조리 회수하는 그날까지.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306 - P67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해지면 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은 사이좋은 오랜 벗처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이 세계를 순례하는 것 같다. 현자가 있어, 이 생각이 그저 가난에 눈이 먼 자의 틀에 박힌 시선에 불과하다고 깨우쳐주면 좋으련만.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306 - P71
지엄하신 알렉산드로스 왕께서 친히 찾아오든 말든, 지금 햇빛을 가리고 섰으니 한 발짝만 옆으로 비켜달라고 청한 견유학파5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오늘 내 쓰레기 집 의뢰인으로 환생한다면 그깟 돈 따위의 가치를 견주느라 내 행복한 ‘개 같은 생활kynicos bios’을 놓치지나 말라는 진리를 전해줄 것만 같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306 - P84
이집트 고대벽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상인 사람 몸에 자칼 머리를 한 아누비스Anubis는 장례 집전과 방부 처리, 미라를 관장하는 신이기도 하다. 아이깁투스의 신성神聖은 고양이라고 인간과 다르게 대하지 않았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306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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