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좀 마세요." 나는 소리쳤다. "저 악마 같은 작살잡이가 식인종이라는 말을 왜 해주지 않았소?"

"알고 있는 줄 알았지. 거리에서 머리를 팔러 다닌다고 했잖나? 이제 다시 침대에 들어가 자도록 하게. 이봐, 퀴퀘그. 너, 나 안다. 나, 너 안다. 이 사람, 너하고 같이 잔다. 알았지?"

"나 잘 알아." 퀴퀘그는 툴툴거리고 파이프를 뻐끔뻐끔 빨면서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너 들어와." 그는 손도끼로 나를 부르고 옷을 한쪽 옆으로 던지면서 덧붙여 말했다. 그의 태도는 정말로 예의바를 뿐만 아니라 친절하고 너그럽기까지 했다. 나는 선 채로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문신을 했는데도 그는 대체로 깨끗하고 말쑥해 보이는 식인종이었다. 내가 왜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었을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야. 내가 이 사람을 두려워했다면, 같은 이유로 이 사람도 나를 두려워했을 거 아닌가. 술에 취한 기독교도보다는 취하지 않은 식인종과 함께 자는 게 나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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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은 알록달록한 색깔의 작은 네모꼴과 세모꼴 헝겊을 이어붙인 것이었고, 그의 팔에는 끝에서 끝까지 온통 크레타의 미궁 같은 형상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는데, 모든 부분이 저마다 다른 색깔이었다. 이것은 아마 그가 바다에서 불규칙적으로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려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 팔을 햇볕에 드러내기도 하고 그늘에 두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팔은 꼭 솜을 넣어서 누빈 조각이불처럼 보였다. 실제로 내가 처음 눈을 떴을 때는 그 팔의 일부가 이불 위에 놓여 있었는데, 팔과 이불의 색깔이 한데 어우러져서 어느 것이 팔이고 어느 것이 이불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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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츠 신는 것을 남에게 보이면 안 된다는 예법은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퀴퀘그는 알다시피 탈바꿈 상태─애벌레도 아니고 나비도 아닌 상태에 있는 존재였다. 그는 기묘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자신의 특이함을 드러내 보일 만큼만 문명화되어 있었다. 그의 교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아직 졸업하지 않은 재학생이었다. 조금이라도 문명화되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부츠 때문에 애를 먹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아직도 야만인이 아니었다면 부츠를 신기 위해 침대 밑에 들어가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마침내 그는 움푹 찌그러지고 납작해진 모자를 눈 위까지 눌러 쓴 채 침대 밑에서 기어 나왔다. 그러고는 방 안을 쿵쿵거리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그것은 축축하고 주름진 쇠가죽 부츠─발에 맞춰 주문한 부츠도 아니었을 것이다─가 아직 길이 들지 않아, 그 추운 아침의 첫걸음에 발을 꽉 죄어 고통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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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보았더니, 놀랍게도 그는 침대 모서리에서 작살을 집어 들어 나무로 된 기다란 자루를 뽑아버리고 작살의 날을 칼집에서 빼내더니 부츠에다 쓱쓱 문질러 날을 벼린 다음, 벽에 걸려 있는 작은 거울로 성큼성큼 다가가서 기운차게 수염을 밀기 시작했다. 아니, 얼굴에 작살질을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그때 퀴퀘그가 로저스 상회의 최고급 칼붙이를 너무 혹사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작살 날이 아주 좋은 강철로 만들어져 있고 그 길고 곧은 날이 늘 날카롭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는 그의 이런 행동에 별로 놀라지 않게 되었다.

나머지 몸치장은 곧 끝났다. 그는 커다란 선원용 재킷으로 몸을 감싸고, 작살을 마치 장군의 지휘봉처럼 휘두르면서 자랑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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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컷 웃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보기 드물게 좋은 일이다. 그래서 더욱 유감이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자신을 유쾌한 웃음거리로 제공한다면, 그 사람이 부끄러워서 꽁무니를 빼지 않고 기꺼이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고 남의 웃음거리가 되게 해주어라. 자신에 대해 실컷 웃을 거리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들어 있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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