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스는 진실 속에 허구를 짜깁기했으므로 나와는 정반대의 수법이다. 내가 하는 일은, 이야기 자체는 명백히 새빨간 거짓말일지 모르지만 거기서 말해지는 내실에는 얼마간의 진실이 내포되어 있다는 말이다. 얼마간의 진실이 없다면 영화는 단지 허풍선이가 돈을 들여 지어낸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불과하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76499 - P13

영화 <이노센스>4에서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물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지금도 계속되는 철학적 명제다. 왜 나는 여기에 있는가? 이 의문을 인류는 끊임없이 품어왔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 따르면 이 세계에는 객관적 진실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으며, 오로지 주관적 진리만이 존재한다. 혹은 절대적인 진실도 없고, 있는 것은 상대적 진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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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조인간과 인간을 구별하는 것은 무엇인가? 데카르트는 인간을 "마음을 가진 기계"라고 했다. 그렇다면 기계가 마음을 가졌을 때 그 기계는 인간인가? 영화 <블레이드 러너>5에 등장하는 리플리컨트는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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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파헤치고 생각해나가다 보면, 모든 것은 해체된다. 그리고 의미는 사라져간다. 정말로 우리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이 세계는 존재하는가? 아니, 우리 자신은 정말로 존재하고 있는가?
애초에 허구와 진실에는 차이가 있는가? 행복이란 무엇이고, 불행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친구는 필요한가? 그리고 진짜 영화에서 그려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76499 - P19

진실과 허구의 애매모호한 경계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온 나의 인터넷에 대한 의견은 이 책에서 충분히 설명할 생각이다. 개인이 의체義體와 전뇌電腦에 의해 강화된 가까운 미래를 그린 나의 작품 속에서, 인간의 의식은 광대한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다. 그런 세계를 20년도 전에 묘사했는데,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해 정말로 인간이 24시간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는 세계가 실현되고 말았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76499 - P22

다만 내가 그린 세계는 더욱 앞서간 이야기로, 거기서는 인간의 의식이 광대한 네트워크의 바다에 융합되는 단계까지 나아가고 만다. 더 이상 기계적인 신체조차 필요 없어지고, 의식만이 세계를 돌아다닌다.
그때에 인간은 이 세계와 우주를 어떤 식으로 인지하고, 어떤 세계관을 갖게 될까? 혹은 그때에 우주는 인간을 어떤 식으로 인식할까? 물리법칙으로부터 해방된 인간 존재를 신은 용서할 것인가? 이거야말로 내가 영화 속에서 그려온 인간의 미래상이자, 시뮬레이션이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76499 - P22

가슴 깊은 곳의 그 핵은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다. 그 의식과 같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네트워크 공간은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 조금 더 이 육체 속에 가둬두고, 그 핵의 명령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쓴 이유는 거기에 있다. 어차피 우리는 당분간 부자유스런 인간으로서 본질을 응시한 채 허구와 진실의 파도를 타며 잘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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