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작품은 1600년에 만들어진 에우리디체)이다. 에우리디체는 신부 이름이고, 신랑은 오르페오다.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에서 따왔다고 한다. 대본은 오타비오 리누치니, 작곡은 야코포 페리가 했다. - P29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1567-1643)는 이탈리아 만토바 지역의 곤차가 궁정에서 책임음악가이자 비올 주자로 인생 전반기를 보냈다. 신분은 하인이었다. 젊은 공작은 연금술과 사치, 예술과 섹스에 탐닉했으며, 전속 악단에도 많은 관심과 집착을 보였다. 당시 귀족들은 평화로운 시절의 힘을 악단으로 과시하곤 했다. 그리하여 서로 악단 경연을벌이는 것이 흔한 풍경이었다. 스카우트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공작은 잠시도 몬테베르디를 가만두지 않았다. 출퇴근하는 그에게휴가도 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급료는 밀리기 일쑤였다. 창살 없는감옥이나 마찬가지였던 상황들이 작곡가의 메모와 편지에 많이 남아있다. 돈을 제대로 주지 않는 공작에게 몬테베르디가 37세(1604년) 때보낸 편지를 소개한다. 네 살 위의 주인에게 쓴 글이 퍽 상징적이다. - P35
점점 발전해가는 아리아의 형식을 알 수 있다. 이것은 A-B-A-C-A‘ 구조이다. 원래 다 카포‘라는 아리아 도식은 ‘앞머리부터‘라는 뜻으로기본이 A-B-A‘로 확고히 정해져 있었다. 마무리 A‘ 부분은 A의 장식적인 변주로, 가수가 기량을 뽐내는 부분이다. 상류층의 주문에 따른 소규모 납품으로 출발한 노래극은 중산층을거쳐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점점 많은 사람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폭넓은 청중을 위한 작품들로 변화해갔다. 전용극장도 생겼는데, 1637년 첫 오페라 극장이 국제도시 베네치아에 문을 열었다. 마침 몬테베르디가 인생의 황혼녘을 불태우던 곳이었다. <율리시즈의 귀환〉, 〈포페아의 대관식〉이 그곳에서 초연되었다. 두가지 모두 인터넷에서 볼 수 있다. - P39
라틴어에서 온 단어인 오페라는 오푸스(opus, 작품)의 복수형이다. 번역하면 작품들, 작품묶음 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크게3가지 작품의 결합이다. 첫째 음악작품, 둘째 시를 포함한 문학작품, 셋째 무대에 구현하는 극작품이다. - P40
바로크 시대에 하이브리드(혼합) 인간 카스트라토가 등장함으로써변화가 일어났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이 시간의 문을 통과하기로 하자. 무대는 상상이나 현실의 재현(再現)이다. 따라서 현실을 강타한 제3의 성이 무대를 뒤흔든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바로크는 ‘못난이 진주‘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후세 사람들이 붙인이름이다. 그 직전에 영국의 청교도혁명이 1660년까지 긴 시간 동안복잡하게 진행되었다. 작용-반작용의 물리법칙을 세상사에 적용하는사람들은 그 후를 반혁명으로 본다. 바로크는 바로 그런 ‘반혁명‘의 시기였다. - P42
교회에서 남성에게만 라틴어 학습을 허용한 까닭에, 성가대는 가사를 읽을 줄 아는 남성들의 몫이었다. 따라서 그들만의 화성에 불과했지만 날이 갈수록 풍성해졌다. 카랑카랑한 고음이 악보에 표기되었다. 바로 그러한 필요에 소프라노 카스트라토가 부응했다. 보이 소프라노(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소년의 목소리)와 가성의 팔세토(가장 높은 목소리인 두성보다 더 높은 성역으로 부르는 기법)가 있었지만 소프라노 카스트라토의 실력이 월등했다고 한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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