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내 취미는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자동차 번호판의 숫자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가령 ‘45=3×3×5’라는 식으로 번호판의 숫자들을 소수●로 해체하곤 했다. 흔히 인수분해라고 불리는 이것은 내가 심심할 때 즐겨 하던 놀이였다. 한창 수학에 맛을 들여가던 나는 특히 소수에 매료됐다. 수학에 대한 내 풋사랑은 곧 열정으로 발전했다. 열네 살 때는 수학 캠프에 참가해서 받은 루빅큐브를 가슴팍에 꼭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게 있어서 수학은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질서 정연한 도피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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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세상의 붕괴는 한때 나의 질서 정연한 도피처였던 수학이 세상사에 깊이 얽혀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문제를 부채질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주택시장의 붕괴, 주요 금융기관들의 파산, 실업률의 급등. 이 모든 문제가 마법의 공식을 휘두르던 수학자들의 원조와 사주로 발생한 재앙이었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수학의 놀라운 능력들은 금융 기술과 결탁해 혼란과 불행을 가중시키는 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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