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발달했더라도 인간의 의지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대항해 시대는 금에 대한 욕망, 하나님 말씀의 전파라는 강한 의지에 덧붙여 기술 발전이 결합한 결과였다.
‘하나님, 대포, 배’가 유럽 문명의 세 기둥이 되었던 것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34

섬나라이기 때문에 영국의 대외적 팽창은 바다를 통해 달성되어야 했다. 그 사실이 명확히 인식된 것은 튜더 시대(1485∼1603)에 들어서면서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30

헨리 7세(재위 1485∼1509)의 즉위는 영국 해상력의 역사에서 첫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튜더 왕조의 왕들은 섬나라 잉글랜드의 운명은 결국 바다에, 그것도 먼바다로의 진출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튜더 왕조는 돛을 만드는 데 필요한 아마와 대마의 재배를 장려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35

그러나 해군의 진정한 시작은 헨리 8세(재위 1509∼1547)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헨리 8세는 아버지보다 활발하게 선박 건조 장려금을 시행하고, 해군 보유 선박 수를 84척으로 크게 늘렸으며, 왕궁이 있는 그리니치 가까운 곳에 조선소를 건설했다. 나아가 왕은 함선과 해군 정비창의 관리 업무를 담당할 해군위원회Navy Board를 창설하여 제도적 영속성을 부여했다. 어떤 사람들은 해군에 속한 배의 선장으로 활동하면서 일생을 보냈는데, 이는 전문적인 해군 장교 부대의 시초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37

엘리자베스 시대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것은 뛰어난 바다 사나이들의 등장이었다. 프란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 1542?∼1596), 월터 롤리(Walter Raleigh, 1554∼1618) 등 해상의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 이때 등장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41

이때 등장한 바다 사나이들은 사실 일종의 해적이었는데, 사략선을 이용한 해적 행위는 그 시대 해상 전투의 특징적인 형태였다. 사략선 업자는 정부와 계약을 맺고 약탈 면허장을 얻어 전시에 적선을 공격할 권리를 허가받은 민간업자들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41

바다 사나이들이 사략 행위에 몰려든 이유는 무엇보다도 전리품과 전리 분배금을 받을 기회 때문이지만 사략 행위가 주는 재미와 자극도 무시할 수 없었다.
1587년에 드레이크가 나포한 산 펠리페 호에 실린 화물과 금은보화의 가치는 자그마치 11만 파운드가 넘었다.
이런 위험한 활동을 통해 얻는 이익은 국가 수입 전체의 10~15퍼센트에 이르렀는데, 그 덕분에 자본 공급이 늘고 해운이 성장했으며 무역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메우고도 남았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