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현재 영국이라 부르는 나라는 1707년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통합하여 통합 왕국United Kingdom을 만들면서 기초가 마련되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1707년 이전에는 ‘잉글랜드’라는 명칭을, 1707년 이후에는 ‘영국’이라는 국명을 사용하기로 한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615

따라서 자유와 제국이라는 두 이미지에 내포된 갈등은 영제국이 기본적으로 상업 제국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해 가능해진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13

‘자유와 제국’이라는 전통적으로는 양립할 수 없는 이상은 영국인들에 의해 결합되었다. 저명한 역사가 허버트 버터필드(Herbert Butterfield)가 갈파했듯 "자유라는 휘그적 역사와 제국이라는 토리의 역사는 불가분의 것" 이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13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해적에서 위대한 해군 지도자로 변신한 드레이크 같은 인물들은 모두 주어진 기회를 잘 포착한 자유인들이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14

제국의 팽창은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단계인 1600~1750년 사이에 제국은 신세계의 정복과 함께 시작되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16

두 번째 단계인 1750~1850년 사이에 영제국은 아시아와 오스트랄라시아로 팽창했는데 인도 아대륙이 가장 중요한 획득물이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17

오늘날 영연방에 속한 나라의 수가 53개에 이른다는 사실은 영제국이 얼마나 광대한 규모였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18

한편 경제적·전략적 동기가 중요한 만큼이나 소위 ‘문명화의 사명’은 제국주의의 가장 큰 명분이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27

그러나 근대 유럽은 다른 어느 문명보다도 ‘근대성’을 자신들의 독특한 자산으로 주장하면서 문명의 전파를 사명으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특이했다. 특히 영제국은 자유와 자유무역의 전파를 자신들의 소명으로 여겼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27

영국과 유럽 제국주의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백인들이 처음 왔을 때,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땅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 후에 우리는 주변 상황이 변한 것을 발견했다. 지금 그들은 땅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있다.8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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